국제 물리 올림피아드 출전자들 서울대서 특별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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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올해가 시작된 지난주 서울대 자연과학관 강의실. 방학인 데도 29명의 학생들이 열심히 소광섭(물리학부)교수의 강의를 듣고 있다.

소교수가 칠판에 문제를 내며 말한다."포텐셜 에너지가 이러저러할 때 바닥상태의 파동함수는 어떻게 될까."

일반인은 뜻도 모를 말이다. 그럴 것이 물리학 전공의 대학 3학년생 이상이라야 풀 수 있는 양자역학 문제다.

"김경민군이 나와서 풀어보지."

한 학생이 나와서는 복잡한 미분방정식 기호를 써가며 문제를 푼다. 그런데 대학생이라기엔 지나치게 어려 뵌다.사병처럼 짧은 머리에 얼굴에 여드름도 났다. 김군은 서울 한성과학고 1학년. 다른 학생들도 대부분 고등학교 1학년과 2학년들이다. 중3도 한명 있다.

그런데도 대학교 물리학과 고학년용 문제를 어렵잖게 풀어낸다.

이들은 지난해 전국의 과학영재들 가운데 뽑힌 국제 물리올림피아드 출전 후보들이다. 오는 7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제 33회 올림피아드에 출전, 다른 나라 고교생들과 두뇌를 겨루기 위해 3일부터 10일까지 특별 교육을 받는 중이다.

이 기간 중 서울대 기숙사에서 합숙하며 낮에는 교수들의 지도로 6시간씩 물리 문제 풀이와 실험을 하고, 밤에는 모여 공부와 토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영재들이 모여 21세기 과학부문 노벨상의 꿈을 키우고 있는 현장이다.

이들은 지난해 7월 서울대가 주관한 국제올림피아드 선수 1차 선발 시험에서 뽑혔다. 지난 여름방학에 서울대에서 2주일 동안 교육을 받았고, 학기 중에는 인터넷을 통해 문제풀이 지도를 받았다. 오는 4월 마지막 선발시험에서 인도네시아에 갈 5명을 뽑는다. 지금은 같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며 문제를 풀지만, 곧 경쟁자가 되는 셈이다.

김경민군은 "국제대회까지 나가 상을 받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그보다 이런 자리에서 고급 물리를 배울 수 있다는 게 더 신난다"면서 "최종 선발은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첫 문제를 쉽게 풀자 이번에는 수소원자에서 전자의 에너지를 구하는 문제를 냈다. 김주영(민족사관고 2)군이 노트에 미분.적분을 한참하더니 가방에서 손바닥 두 배만한 공학용 계산기를 꺼내 마무리 계산을 한다. 늘 가지고 다니며 애지중지하는 계산기다. 김군은 "고급 물리 문제를 풀때 꼭 필요한 재산목록 1호"라고 자랑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과학 문제를 푸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유일한 중학생 양민규(대전 갈마중3)군은 "TV나 컴퓨터 게임보다 물리 문제와 씨름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면서 "중학교 때부터 닥치는 대로 문제를 풀다보니 이공계 대학생용 물리 교과서 문제까지 다 풀어봤다"고 말했다.

이우진(광주과학고1)군은 "분명하고 깨끗하게 답이 나오는 과학에 매료돼서인지 간혹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할 여지가 있는 국어 과목에는 별로 흥미가 끌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1학년 국어성적은 '수'다.

소광섭 교수는 "오늘 낸 문제는 그간 국제올림피아드에 출제됐던 것보다 한차원 높은 것"이라며 "학생들이 이를 어렵잖게 풀어내는 것을 보니 새삼 미래의 우리 과학계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세계 각국의 고교생 대표들이 물리 문제풀이와 실험 두 부문으로 실력을 겨루는 경진대회. 67년 폴란드에서 헝가리.루마니아 등 동구권 5개국의 행사로 시작돼 매년 열리는 국제 행사로 자랐다. 국가별로 5명씩 참가한다. 우리나라는 92년부터 출전했다. 98년 59개국 중 5위를 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2004년 대회는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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