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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자살은 ‘극단적 패배’다. 끝까지 버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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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직장생활에서 행복한 순간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 인생이 그렇듯이 대부분의 시간을 불행하게 보내다가 아주 가끔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 직장생활이라고 해야겠죠. 그런 면에서 전 축복받은 편입니다. 일하는 과정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전무에 이를 때까지 단 한 차례도 낙오한 바 없이, 성공가도를 걸어왔으니까요. 그런 제게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해 부사장 승진 때 누락되더니, 얼마 전 인사에서는 연구개발 부문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평생 영업만 하던 사람더러 연구개발을 하라니요. 명분은 그럴 듯 했습니다. 앞으로는 그 부문이 전략 분야라고요. 그러나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모두들 좌천 인사, 왕따 인사라고들 입방아를 찧습니다. 결국 나가라는 의미라는 걸 저도 잘 압니다. 어렸을 때부터 학창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순탄하게 살아왔는데, 처음 당하는 수모다 보니 정말 참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각 방을 쓴 지 오래인 아내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요즘은 회사 문을 들어설 때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심장이 멎는 듯합니다. 후우~. 정말 이러고 살아야 할까요? 어제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사표 한 장 그리고 유서 한 장을 써봤습니다. 두 장의 종이 쪼가리. 쓰고 나니 별 거도 아니더군요. 이렇게 간단한 것을... 기로에 선 내 직장생활 또 내 인생. 헛된 것은 아니었겠죠?

A : 정말 결행하실 겁니까? 자살을 하고 싶은 심정을 이해한다는 따위의 말,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는 거 잘 알지만, 누구나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은 그런 순간이 있다는 말을 일단 해주고 싶네요. 우라질~ 당신이 받아들이건 말건, 그렇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혼쭐이 좀 나야겠습니다. 겨우 그 정도의 고통에 사표 운운하니 말입니다. 정말 너무 곱게 자라셨고, 너무 잘 나가셨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이 크게 느껴지겠지만, 당신이 말한 그런 정도는 대부분의 직장인에게는 일상사요 ‘밥’이랍니다. ‘밥’이라고 말하니 조금 우스운데, 그만큼 흔한 일이라는 것이죠.

내게도 당신과 비슷한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부잣집 아들에 머리까지 똑똑해서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였죠. 생긴 건 솔직히 조금 촌스럽긴 했지만, 좋은 집안의 처자를 만나 결혼해서 두 딸 낳고 행복한 듯 살았던 그 친구. 그 잘난 친구의 말로가 어쨌는지 아십니까? 직장생활에 적응을 못해 몇 번 옮겨 다닌 끝에 결국 그만두고, 철학 공부 한다며 입산을 반복하다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 친구는 왜 직장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을까요? 왜 자주 그만뒀을까요? 도대체, 왜~! 자살을 택하고 말았을까요? 너무 어려움 없이 자랐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뜻에 따라 곧게 잘 자란 나무였지만, 너무 곧게 자란 것이 문제였던 것이죠. 누구나 다 겪는 직장생활의 애환.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부자 아빠가 있었기 때문에, 또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굴욕적인 직장생활을 하느니 꼴사나운 부장에게 보란 듯이 사표 날리시고 사무실 문을 뻥‘ 박차고 나오시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직장이라고 해서 애환이 없을 리 없고, 사표 내는 것도 이골이 나면 아무 것도 아닌지라 사표내기를 반복하다 결국, ‘치아라 마!’ 하고 입산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죠. 입산!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세상의 시름을 다 잊고 맑은 공기 마시면서 조용히 지내다보면 속세의 때는 한 꺼풀씩 벗겨지고, 청정무구 상태로 되돌아간다! 피로에 절어 심산유곡은커녕 동네 뒷산 산책도 귀찮아 그만두는 저열한 인간들로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죠. 그러나 그것도 해답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 친구, 결국 제 발로 속세로 돌아와 저 세상으로 갔으니까요.

얼마 전에 삼성전자의 부사장이 자살을 하는 바람에 세상이 떠들썩했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 남부러울 것 없이 보이는 사람이 자살을 택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살률 세계 1위! 그냥 1위가 되는 건 아니겠죠?

그 일이 있고난 이후,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꼭 이렇게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잘 지내냐“ 정말 걱정이 돼서 그렇게 묻는 건데, 건성으로 이렇게 답을 하곤 하죠. ”그럼, 잘 지내지“ 아! 가끔은 그 말의 뒤끝에서 묻어나는 외로움을 볼 때도 있답니다! 그런데, 가끔은 옆에서 이렇게 거드는 싸가지 없는 놈들도 있습니다. ”얘 이번에 부사장 됐잖아!“ 무슨 말인지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런 놈들에겐 정말 싸대기를 올려주고 싶어진답니다.

얼마 전에 신경정신과 의사 한 분을 만났더니, 이런 표현을 쓰더군요. ‘폭탄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맞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언제 자살 테러를 감행할지 모르는 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믿기 어렵다고요? 잠시 주위를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자가 제일 먼저 터질지.

안전핀이 이미 제거된 폭탄, 초시계가 거의 다 돌아간 폭탄, 자기가 폭탄인지도 모르고 쏘다니는 폭탄, 당신 곁에도 폭탄은 분명히 있을 겁니다. 아니, 당신이 폭탄인가? 전국의 폭탄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는 ‘제발 터지지 말아 달라’는 겁니다. 터지고 싶은데 터지지 말라고 말하니 화가 나겠지만, ‘절대 사소한 일로는 터지지 말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괜히 멀쩡한 사람 놀라니까...그리고...굴욕적으로 살아내는 것도...습관 들이면, 할 만 하니까...

자~ 직장생활의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택한다면, 그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근, ‘패배’를 자인하는 겁니다. 그것도 ‘극단적인 실패’를! 적들의 포화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산화한 격이니까요. 그 산화로 나라에서 훈장이라도 준다면, 그래서 가문의 영광으로 남는다면, 적극 권장하겠습니다. 하지만, 가문의 수치로 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절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라도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말이죠.

죽음으로 항변을 하시겠다고요? 항변의 대상인 그들이 정말 양심의 가책을 느낄까요? 살짝 느끼긴 하겠죠. 하지만, 죄책감의 신속한 분산을 통해, 오래지 않아 당신을 마음속에서 지우고 말 겁니다. 오히려 당신의 죽음을 기회로 생각하고 승진을 꿈꾸는 자들이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폴란드 대통령과 내각 일행이 항공기 추락 사고로 몰살당한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슬픈 와중에도 정적들은 좋아라 했을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마무리를 한다면, 자살을 결행할 정도의 ‘용기’가 있다면, 그 남은 기운으로 복수혈전을 꿈꾸고 도모하는 편이 오히려 더 낮다는 겁니다. 죽으라고 보냈더니 의외로 잘 버티면? 적들은 아연 긴장을 하게 될 겁니다. 그 사이에 이미 당신은 충분히 강해져 있을 테고요. 믿기 어렵다고요? 분명, 이런 일은 일어납니다! 아니,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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