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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간디 다시 읽기… 신간 '마하트마 간디' 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마하트마 간디는 이미 우리 시대의 신화적 영웅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신간 '마하트마 간디'를 손에 든 독자는 책장을 덮는 순간 혹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소심하고 때로는 실수도 하는 인간 간디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차라리 약과다. 간디 암살범 고드세가 '무죄'일 수도 있다는 위험천만한 판견을 마음 속으로 내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화가 깨지기를 두려워하거나 박제된 영웅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고자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어울리지 않는다.

위인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1997년 영국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 인도 출신의 저자는 객관적 서술이란 명분 아래 주인공 간디에게 반대했던 조연급 인물들에게도 비중있는 배역을 맡기고 있다.

그래서 『간디 자서전-나의 진리실험 이야기』(한길사), 『날마다 한 생각』(호미), 『간디, 맨발로 갠지스강을 걷다』(지식공작소) 등 간디의 육성을 담은 책을 읽은 후 이 책을 보는 것이 순서이리라 판단된다.

간디와 반대파들간의 팽팽한 긴장을 지루해하지 않고 왜 간디가 비폭력 저항노선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식민지와 종교분쟁이라는 폭력적 상황에서 무력투쟁이 아닌 비폭력 저항이 도대체 현실적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곰곰이 따져 보고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폭력과 평화의 문제, 종교와 정치의 문제, 영웅과 암살범의 문제, 그리고 영웅에 대한 후대 평가의 다양성 등. 간디가 선택한 비폭력 저항노선은 힘에 대한 신앙심을 갖고 있는 세력들에겐 너무도 생소한 문법이었다.

이 책은 간디의 일생을 당시 정치사회적 배경과 함께 조명한 인물 평전이다. 특히 간디 암살을 둘러싼 구체적 상황은 우리 사회에 거의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 주목된다. 책의 마지막 편에 암살범의 '재판'을 배치한 것은 저자의 의도가 깊숙하게 들어간 장치다.

고드세가 5시간에 걸쳐 행했다는 최후진술 전문이 소개된다. 간디와 암살범의 입장을 병렬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는 암살범 고드세처럼 극렬 힌두교도는 아닐지라도 힌두교의 정치적 세력확대를 옹호하는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이다.

힌두 국가와 힌두교도에게 봉사하는 것이 첫째 임무라고 믿는 확신범이자 마르크스주의에도 심취한 적이 있으며 한 신문의 편집인이기도 한 37세의 테러리스트는 간디의 비폭력 노선에 대해 이렇게 진술한다.

"인류의 다수가 일상적 생활에서 이 고상한 원칙을 견실하게 고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꿈에 불과하다. …나는 공격에 무장 항거하는 것이 불의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간디는 진리와 비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이 나라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난을 초래한 폭력적 평화주의자였다.

…간디는 인도의 국부(國父)가 아니라 (이슬람을 믿는)파키스탄의 아버지라는 것이 밝혀졌다. …나는 간디가 없는 상황에서 인도의 정치는 분명히 실용적이 될 것이고, (이슬람 세력에게)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고, 무력을 통해 강해질 것이며, 그것이 국가를 건설하는 건전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 진술에는 간디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이 들어있다. 간디에 대한 비판은 주로 좌파 이론가들에게서 나왔다.

이념의 대립이 한창이던 시절 극렬 좌파의 시각에서 보면 손쉬운 해결책인 '폭력 혁명'을 거부하고 '비폭력 저항'을 외친 간디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그러나 이념의 대립이 붕괴한 오늘날 인류의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추구한 간디의 비폭력 사상이 새롭게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디가 특정 정권 차원이나 특정 종교를 위한 혁명이나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몸소 실천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간디는 여전히 최고의 영웅이고, 고드세의 암살은 당시는 물론 오늘날에도 힌두교도를 포함한 대다수 인도인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델리대학에서 인도역사를 전공한 이옥순(숭실대)교수는 말한다.

절대적으로 힘이 약한 상황에서 강자에게 도전하는 최고의 무기로 비폭력을 선택한 독립운동가이자 탁월한 정치가였던 간디, 그리고 민족 내 종교분쟁이 폭력화하는 상황에서 힘이 약한 이슬람의 목소리도 경청하며 끌어안으려 했던 간디, 그의 삶의 방식은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끊임없는 '진리 실험'이었고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게임의 법칙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간디의 재발견(Rediscovering Gandhi)'이다. 그런데 저자처럼 간디의 반대파를 통해 간디를 재발견하기보다는 간디가 인도의 역사와 사상, 그리고 구체적 현실에서 진정하게 삶을 개선할 이론을 끌어낸 치열한 방법론을 재발견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간디가 염원한 세계와 종교의 평화는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의 진리 실험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평화와 공존을 염원하는 모든 이의 가슴 속에서.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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