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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비트겐슈타인은 왜?' 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20세기 철학자 중의 철학자인 두 사람의 명성을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두 사람에 관한 기본정보에 논쟁까지 다룬 이 책에 주눅부터 들 것이다.

따라서 지난 세기의 지성사가 녹아 있는 이 책을 일간지 서평지면에 올린 용기에 놀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문제적 저작'이다. 오해하지는 말자. "어렵지만 당신도 알아야 한다"는 엘리트적 강박관념 때문이 결코 아니니까.

『비트겐슈타인은 왜』(원제 Wittgenstein's Poker)가 문제적 저작이라고 하는 이유는 서술방식의 특출한 묘미 때문이다. 인문학의 정수인 철학, 그 중에서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이가 몇 되지도 않을 대가(大家) 사이의 논쟁을 마치 추리소설 풀어나가듯 전개할 수 있다는 착상에 무릎이 쳐진다. 문제는 그런 착상을 철학자 인물평전이라는 '지식상품'으로 만들어낸 서술능력이 경이로운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현대철학의 『장미의 이름』'으로 자리매김돼야 옳다. 움베르토 에코가 추리소설이라는 장치를 통해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중세의 엄숙주의 사이의 긴장관계를 서술했듯 영국의 저널리스트 두 명은 성공적인 '대중적 철학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저자 두 명은 BBC의 다큐멘터리 작가 출신. 따라서 이 책은 '인문학의 대중화'라는 명제를 안고 있는 국내 출판계도 벤치마킹할 가치가 충분하다.

책의 시작부터 재미있다.첫장은 '부지깽이 스캔들'. 다음은 '매혹의 카리스마' '제3의 사나이 버트런드 러셀' '포퍼, 『나의 투쟁』을 읽다' 하는 식이다. 엄숙한 철학서에 부지깽이가 나오고, 히틀러의 책이 등장한다.

왜 그럴까□ 사정은 이렇다. 1946년 10월 25일 유럽의 천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애송이 칼 포퍼 사이에 한판 승부가 일어났다.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의 한 세미나장이 문제의 해프닝 장소.

포퍼 강연이 시작될 무렵 곧바로 비트겐슈타인과 포퍼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흥분한 연장자(年長者) 비트겐슈타인은 부지깽이를 들고 포퍼를 위협했다.

누군가가 달려나와 그를 모시고 나갔다. 둘 사이의 해프닝은 불과 10분. 훗날 포퍼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비트겐슈타인의 흥분은 논쟁에서 격파당한 증거라는 식으로 서술했다.

물론 회고록이 출간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 사건은 수수께끼의 사건으로 남은 채 거듭 인용되곤 했다.

두사람의 저자들은 충분한 고증과 취재과정을 거쳐 이 해프닝을 묘사한다. 여기에 더해 두 거두 사이의 갈등이 과연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가계사(家係史)와 지적 배경까지 인물평전 방식으로 해석한다.

단 10분의 해프닝을 중심으로 이토록 다양한 정보를 풀어내는 솜씨를 눈여겨 볼 만하다. 당시 빈 철학계를 풍미했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실증주의, 이를 뒤집으려 했던 포퍼의 철학 등에 관한 정보는 이 서술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진다.

"철학서 서술의 새로운 전형". 서구의 한 서평지 말이 빈말이 아니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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