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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톰 웨이츠, 벼락 같은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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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음악의 저수지’ 블루스 (상)

번개 맞는다는 말이 있지만, 내겐 음악이 종종 그렇다. 덤덤하던 음반, 그런가 싶었던 노래에 어느 날 꽂힌다. 보름 전 만난 가수 톰 웨이츠가 그랬다. 그의 음반 ‘본 머신’을 들으며 아찔했다. 마법의 순간이다. “뭐 이런 음반이 있어?” 했었는데, 귀가 뚫렸나? 아니면 철학자 니체의 말대로 무언가 본능의 탈선이 일어난 걸까? 5번 트랙 ‘후 아 유’ 을 비롯해 ‘댓 필’ ‘리틀 레인’을 듣고 또 들었다. 거친 목소리로 웅얼대는 노래, 높낮이나 멜로디도 없으며 때론 꽥꽥대기도 한다. 지독히도 못 부른다. 그런데도 끌린다.

허스키한 목소리는 루이 암스트롱보다 더하고, 뇌까리는 건 천하의 음유시인 밥 딜런을 찜 쪄 먹는다. 아차, 싶어 영화감독 박찬욱의 책을 뽑아 들었다. 5년 전 톰 웨이츠 음반을 구입한 게 『박찬욱의 몽타주』 때문이니까. 뛰어난 글쟁이 박찬욱의 표현대로 톰은 “담배 한 보루쯤 연달아 피운 듯한” 쉰 목소리로 삶의 바닥을 노래한다. 사실 그는 1949년 달리는 택시 뒷자리에서 태어났다. 부랑아로 컸다지만 천재 DNA가 어디 갈까? 톰은 영화판의 대가 프랜시스 코플라·짐 자무시·로버트 알트만 등과 어울려 논다는 게 박찬욱이 전해주는 정보다.

옛날 극소수의 국내 톰 웨이츠 매니아들은 방한한 외국 팝스타를 붙잡고 “당신, 톰을 알아? 그 사람 음악 어떻게 생각해?”라며 묻곤 했단다. 그러면 “열이면 열 모두가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딱 한마디 한다. ‘…천재죠.’”(40쪽) 내가 봐도 그렇다. 아니 그 이상이다. 번개 맞은 음반 ‘본 머신’(92년 그래미상)으로 양이 차지 않아 ‘예스24’ 등 음반점을 뒤졌다. 국내에 톰 팬클럽이 있으면 뭐하나? 그의 음반 단 한 장이 없었다. 수입상 창고까지 뒤져 겨우 12장을 확보했다. 그 전에 톰 웨이츠 매니아인 내 친구 윤광준에게 연락했다.

“우리 톰 웨이츠를 말하자”며 일산에 사는 그에게 바람을 넣어 와인을 마신 게 지난주다. 사진가 윤광준은 자기 책에서 톰을 가수 임재범과 비교한 적 있고, 지난해 톰의 음반 ‘블루 발렌타인’을 들려줬던 주인공이다. 번개 맞기 전 내 귀에 그의 음악은 소음이었다. 지금도 그러하니 그의 음악을 어찌 알까? 다만 포크·재즈·록·블루스를 아우르는 톰의 음악을 음악사의 큰 틀에서 정리하고 싶다. 그런 뜻을 윤광준에게 전하니 관심을 표해줬다.

“요즘은 팝이고 클래식이고 모두 ‘타일 음악’이거든. 규격에 맞추고 곱고 예쁘게 가다듬은 음악…. 톰은 우툴두툴한 화강암 음악이고, 그래서 거칠지만 살아있다고.” 윤광준에게 했던 요령부득의 그런 설명을 다음 주 정리해볼까 한다. 미리 귀띔하자면, 내가 보기에 톰의 음악은 상업주의로 뽀사시해지기 이전, 미분화된 음악이다.

또 하나 그의 음악은 20세기 대중음악의 저수지인 블루스가 뿌리다. 상식이지만 로큰롤을 비롯해 R&B-힙합-랩 등 요즘 대중음악 핵심코드에는 블루스 DNA가 들어있다. 놀랍게도 그건 우리네 국악(민속악)과 무관한 게 아니다. 다음 주 톰 웨이츠에 블루스 그리고 국악까지 집어넣고 말의 매운탕을 한 번 끓여볼까 한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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