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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를 전망한다] 한·중·일 전문가 3각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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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중국.일본 3국 관계는 올해 새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은 3국간 경제적 상호 의존을 높일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한.일 양국이 월드컵을 공동 개최하는 것을 비롯해 한.중은 수교 10주년을,중.일은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상호 이해와 교류의 폭을 넓히게 될 것이다.이 와중에 남북 관계를 축으로 한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도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의 최광수(崔侊洙)전 외무장관, 일본의 나카야마 다로(中山太郞)전 외상(중의원 의원), 중국의 양청쉬(楊成緖)국제문제연구소 소장에게서 올해 동북아 정세 및 양자 관계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대담은 崔전장관이 서울에서 발제하고, 나카야마 전 외상과 楊소장이 현지에서 각각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崔전장관=지난해 미국의 대외 정책은 적잖은 변화와 조정을 겪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9.11 테러사건이 터지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강력한 응징 의사를 표시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행동에 들어갔습니다. 부시의 대외정책을 놓고 일각에선 일방주의라는 비난도 제기됐습니다만 테러전을 통해 미국의 위상과 역할은 더 두드러졌다고 봅니다.

▶楊소장=9.11 테러는 전통적 안보 관념과 전략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또 세계 각국에 공동의 위협이 무엇인지를 인식시켜 주었습니다. 이 공동의 위협으로 분쟁이 중지됐는가 하면, 격화될 뻔했던 이해 충돌 또한 완화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각국간 협력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강화됐습니다.

▶崔=동북아에서는 국가.지역간 이해 갈등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안정과 협력이 기조를 이뤄왔다고 봅니다. 동북아의 안정은 핵무기.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한 '비전통적' 안보위협과 마약을 비롯한 초국가적 범죄 대처를 위해 역내 국가가 협조 관계를 유지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楊=무엇보다 지난해는 중.러가 '선린우호 협력조약'을 체결하는 등 풍성한 결실을 거둔 해였습니다.

▶崔=남북관계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래 소강상태입니다.

그런 만큼 한국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는 중국과 일본의 건설적 역할이 기대됩니다. 중국과 일본은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나카야마 전 외상=한반도 정세는 김대중 대통령이 신임을 받으면서 한동안 평화무드가 조성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남북대화도 당초 기대했던 것만큼 진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시하고 있으며, 일본에 이어 한국과의 협상을 맨 마지막에 진행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에도 불구하고 쌀 원조를 계속해 왔으나 최근의 괴선박 문제는 향후 북.일 관계의 전망을 어둡게 합니다. 앞으로도 한.미.일 3국의 대북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楊=부시 행정부의 대폭적인 한반도 정책 조정이 남북한 화해와 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한반도의 긴장완화 추세가 역전되고 남북관계가 후퇴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남북이 긴 대립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화해협력 과정에서 상호 의심과 불신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중국은 남북 화해와 협력,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계속 건설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다만 9.11 테러 이후 국제정세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로 인해 북.미관계와 한반도와 관련된 문제들에 새 변수가 생겨나고 있는 것은 눈여겨 봐야 합니다.

▶崔=일본이 경제대국에 걸맞게 동북아 안정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왜곡,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서 보이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군사력 증강을 주변국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테러대책특별조치법에 따라 자위대를 국제 분쟁지역에 파견한 것에 대해서도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주변국은 일말의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일본의 방위.안보 역할의 확대는 한국의 안보는 물론 동북아의 안정과도 맞물려 있는 만큼 일본의 조치는 평화헌법의 기본정신을 유지하면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나카야마=일본의 안전보장 개념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국가간 안전보장에 치우쳤던 과거의 안보정책은 9.11 테러 이후 개인의 안전보장은 물론 지역.국가.세계 전체로 다원화됐습니다. 일본의 안보정책은 천연자원을 수입에 의존하는 섬나라라는 차원에서 고려되고 있습니다. 자원 수송로의 안전을 보장하고 최대 무역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시하고 있지요.

일본은 미국과의 안보조약을 바탕으로 삼아 아시아 평화를 중시하고 인도와의 관계 강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의원 헌법조사회 회원으로서 일본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인권을 존중하며▶군사대국이 되지 않는다는 3개의 원칙을 전세계에 전하고 있습니다.

▶楊=10년여에 걸친 일본의 장기 불황은 일본 내에 '신민족주의'의 범람을 가져와 우경화의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왜곡된 역사 교과서 출판, 개헌 시도는 모두 이같은 사조(思潮)의 표현입니다.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국가로서 우리는 일본 내의 이런 동향을 주목하는 한편 역사를 왜곡하는 언론과 행동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은 9.11 테러 이후 자위대 활동 범위와 무기 사용, 미군에 대한 지원 행동, 유엔평화유지군(PKF) 참여 등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었으나, 중국은 이를 깊은 관심을 갖고 주목하고 있습니다.

▶崔=지난해 한.일 관계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다행히 지난해 10월 일본 총리가 한국을 방문,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확인하면서 양국은 역사 왜곡 문제를 비롯한 7개 현안 해결의 접점을 찾았습니다. 중.일 관계도 한.일 관계와 큰 차이가 없었다고 봅니다. 반면 한.중 관계는 수교 이래 모든 분야서 비약적 발전을 이뤘습니다. 한.중.일 3각 관계를 어떻게 내다봅니까.

▶나카야마=앞으로 중국과 남북한.일본.대만 모두 에너지 부족 시대를 맞을 겁니다. 때문에 각국은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주변의 유전개발과 수송 파이프라인 건설에 협력해야 합니다. 이 경우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가스를 공급받게 됩니다. 서로간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특히 동북아의 지역안보 장치도 마련해야 합니다.

▶楊=중.한 양국은 올해 수교 10주년을 맞아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한층 더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양국의 협력은 중.한.일의 협력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3(한.중.일)의 협력 증대를 통해 더 큰 의미와 사명을 지니게 됩니다. 지난해 중.일 관계는 저조했지만 일본 총리의 방중(訪中) 등을 통해 양국 관계가 회복되고 있습니다. 중.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 양국이 협상과 협력을 통해 마찰을 줄이고 진정한 '선린 우호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기를 중국은 바랍니다.

▶崔=미국은 올해에도 한.일 양국과의 군사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려 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태평양지역 안보 전략의 축으로 활용해 동북아 안정 유지의 부담을 덜려는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미.중 간에는 반테러 협력 등 세계 경영을 위한 협조관계가 유지될 것이지만, 전략적 이해상충으로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고 봅니다. 중.일 관계도 국교정상화 30주년을 계기로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상호 군사력 증강, 과거사 문제로 갈등이 표출될 수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동북아는 잠재적 갈등 요인은 있지만 안정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생각하며, 또 그렇게 되길 희망합니다.

▶楊=동북아 역내 국가들이 협력을 강화해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지역을 둘러싼 대국들간에 전략적 이해 충돌이 존재하고 있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각국이 하루 빨리 냉전적 사고를 벗어 던지기를 바랍니다. 냉전 사고란 다른 국가를 계속 전략적인 경쟁상대로 보고 방위를 강화하며 군비를 확충하고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는 긴장만 부를 뿐입니다.

정리=유상철 베이징특파원.

오대영 도쿄특파원.오영환 기자

<대담자 약력>

*** 최광수(崔侊洙.66)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

▶외무부 아주국장

▶국방부 차관

▶대통령 비서실장

▶체신부장관

▶외무장관

*** 양청쉬(楊成緖.71)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출생

▶상하이(上海)푸단(復旦)대 졸업

▶오스트리아 주재 중국 대사

▶외교부 유럽 담당 부국장

▶외교부 정책기획실 국장

▶중국국제문제연구소(中國國際問題硏究所)소장

▶중국태평양경제합작(中國太平洋經濟合作)전국위원회 회장 겸직

*** 나카야마 다로(中山太郞.77)

▶오사카(大阪)출생

▶오사카고등의학전문학교(현 오사카의대)졸업(의학박사)

▶자민당 중의원

▶총무청장관 겸 오키나와개발청장관

▶참의원 자민당 간사장

▶외무상(89~91년)

▶현재 중의원 헌법조사회회장.자민당 외교조사회회장.일본재생회의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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