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정 만주원류고』 첫 완역한 남주성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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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만주족이 우리와 한 핏줄이란 사실을 알고, 중국 측의 만주사 침탈에 적극 대응했으면 싶습니다.”

국내 처음으로 『흠정 만주원류고』(글모아)를 완역해 낸 남주성(52·사진) 감사원 특별조사국 제3과장이 밝힌 번역 동기다. 이 책은 1777년 청나라 건륭제의 지시로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나서 온갖 중국 사서(史書)에서 만주족과 한반도 관련 사료를 골라내 평석(評釋:평가와 해석)을 붙인 사료집이다.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뿌리를 공식적으로 캔 책이기에 권위를 인정할 만하다.

“당시엔 고증학이 강하던 시대니까 신뢰가 가죠. 하지만, 금나라 시조가 신라에서 왔다든가 신라· 백제가 지금의 지린성(吉림省) 지역까지 지배했다는 등 정사(正史)와 다른 내용이 많아 국내 강단사학계에선 외면받았답니다.”

남 과장이 이를 알면서도 번역을 시도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아 2004년 인터넷 역사동호회사이트 ‘우리 역사의 비밀’에 가입했는데 회원들이 이 책의 내용에 목말라 하더라고요.”

육사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던 그는 공부도 할 겸 완역에 도전했다.

“2007년 착수해서 2년 걸렸죠. 주말을 온통 바치고, 2008년 통일교육원에 파견 교육을 간 덕도 봤죠.”

번역하는 대로 인터넷에 올려 회원들의 토론을 거쳤다. 그러고도 탈고한 뒤 중국사학회 명예회장인 이병주 전 영남대 사학과 교수의 감수를 받았다. 원문과 함께 주석을 달고, 지리를 설명한 부분에선 고대 지도와 현대 지도를 붙이는 등 책을 만드는 데 일 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 하지만, 출간은 쉽지 않았다. 원체 대중성이 떨어지는 탓이었다.

“결국 출판사를 하는 친구가 출판을 맡아줬죠. 그러나 500부만 찍었답니다. 한국고대사 연구자들이 읽어주길 바랄 따름이죠.”

책을 낸 지금은 후련한 표정이었다. 가족들 반응이 궁금했다.

“함께 보낼 주말을 뺏겼으니 반길 리가 없죠.” 그의 부인은 “뜻 깊은 일임은 인정하지만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수익도 안 될 일은 더 이상 하지 말라”며 말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달랐다.

“중국 정통사서 25사(史) 중 번역이 안 된 요사(遼史)에 도전할까 합니다.” 몇 년 뒤면 또 하나의 값진 책을 만날 수 있지 싶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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