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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노인들 "한국 침 최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캄보디아 바탐방 사람들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잔다. 전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원광대 의료진, 원불교 은혜심기운동본부와 강남교당 관계자들로 구성된 의료봉사단이 바탐방의 고아원 '평화로운 어린이 집Ⅱ'에 머물 때도 아침 7시가 넘으면 벌써 사람들로 술렁대기 시작했다.

"따 쳐으 뜨랑 나(어디가 아프십니까)."

밀려드는 사람들을 순서대로 앉혀놓고 능숙하게 물어보는 사람은 데비와 삼바. 둘 다 프놈펜의대 출신이다. 원광대 의대 석사과정 장학생으로 와 있다가, 이번 기회에 실력발휘를 제대로 했다.

의사 14명,약사 1명,간호사 1명으로 구성된 의료진은 피부과.소아과.내과.안과.치과.침구과.정형외과 등 7개 분야로 나눠 발빠르게 진료를 시작했다. 이번 봉사를 위해 1천3백만원을 들여 마련한 이동식 치과장비는 최고의 인기였다. 빠른 시간에 비교적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침과 뜸.부황은 노인들에게 특히 많은 호응을 얻었다.

캄보디아와 원광대, 그리고 원불교의 인연은 자못 깊다. 1997년 원광대 의대 1기생이던 김봉석씨와 의료봉사단 일행이 탔던 비행기가 착륙 도중 추락하면서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동문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유지를 잇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국제통화기금(IMF)위기로 주춤했다가 지난해 비로소 의대 차원에서 봉사단이 결성됐다.

원불교 강남교당은 88년부터 지뢰제거, 우물 파주기, 의류 보내기, 고아들 식비제공 등 3억원이 넘는 돈을 지원해오고 있다. 은혜심기 운동본부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모두 5명의 아이들을 한국으로 불러 무료 수술을 해 줄 계획이다.

이렇게 서로 얽힌 인연으로 18일부터 4일간 바탐방에서 진행된 이들의 사랑의 손길을 거쳐간 사람은 모두 1천8백86명. 지난해 3일 동안의 8백여명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다. 박석돈(朴錫敦.52) 의대 학장은 "이번 의료진은 현장경험이 풍부한 교수들이 대부분이어서 더욱 효과가 좋았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의료진이 고아원과 오지를 오가며 진료에 땀을 흘리고 있을 때 원불교 관계자들은 소승불교 국가인 이곳에서의 원불교 포교사업을 위해 보건사회부 장관, 종교부 장관, 바탐방 도지사 등을 만나느라 바빴다.

박청수(朴淸秀)교무는 "손 산 전 캄보디아 총리의 아들 손 수베르트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고아원 옆에 1천여평의 부지를 확보, 내년 말까지는 진료소와 교당이 완성될 것"이라며 "넉넉하진 않지만 지속적인 의료지원과 원불교 포교 및 한글교육 등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떠나는 날. 진료용 고무장갑으로 풍선을 만들며 장난치고 웃던 아이들이 버스와 트럭 주위를 감쌌다. 박수는 쳤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누군가 말했다.

"어, 저 놈들 우네, 저 놈들 참…."

고아원 옆 자그마한 연못 흙탕물 위에는 분홍색 연꽃 예닐곱 송이가 수줍게 피어 있었다. 저들도 내년에는 더 많은 꽃망울을 맺을 것이다.

바탐방(캄보디아)=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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