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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서 1년 방문교수 마친 카치아피카스 교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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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문화에 감동해 한국을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있지만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이유로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처럼 평화봉사단원이나 주한 미군으로 우연히 연(緣)이 닿은 것도 아니고, '목적의식'에서 한국을 연구하고자 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다.

『신좌파의 상상력(이후刊)』으로 국내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미국 웬트워드대학)는 '목적의식'을 갖고 한국을 연구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70년대 중반 유명한 사회철학자였던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함께 공부하기도 했던 그가 1년간 전남대 사회학과에서 방문교수로 일한 후 지난 주말 미국으로 돌아갔다. 출국 전에 만난 그는 전남대 후문에서 구입했다는 개량한복을 입고 있었다.

- 방문교수로 오게 되었던 이유는.

"원래 책 출간을 기념해 1999년 11월 방한했을 때 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고 사회운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회운동도 예전과 비교해 많이 변했다. 예전의 사회운동 세력이 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참여해 인적 하부구조를 변화시켜 과거와 달리 체제 안에서 문제 해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평화운동.시민운동의 부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 한국에 있으면서 느낀 것은.

"처음에는 시위와 감옥에 대해 신물나게 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고통이 사라진 것 같다. 대신 그때나 지금이나 가부장적 관습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과거와 다른 생활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놀란 것은 '세대차'다. 유럽과 달리 한국은 '세대차'가 문화적 갈등과 억압의 주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공동체주의'다. 한국도 공동체가 더욱 해체되는 현상과 함께 여러 가지 비극이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문화운동의 목표는 개별화.파편화를 지양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의 공동체주의적 역동성이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을 가능케 할 것이다."

- 한국 지식사회에 대한 견해는.

"유럽에서도 이렇게 높은 수준의 문화.정치.이론적 담론이 나누어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식인이 시민의 민주적 통제로부터 벗어나 무책임하게 활동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이는 지식인의 정치화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IMF이후 대미의존의 강화와 함께 부시 정부에 의한 햇볕정책의 중단, 테러를 빙자해 북한을 희생양로 삼으려는 미국의 태도에 한국 지식인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나아가 세계적 연대를 통해 냉전 이후 잔존해 있는 사회적 억압을 청산하는 평화운동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 미국의 테러전쟁에 대한 평가는.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쟁에서 지는 경우'이다. 이번 전쟁은 오마르와 빈 라덴을 제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 속에 쌓이는 적대감은 더 큰 재앙을 초래할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세계적 불경기 때마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아프카니스탄이나 소말리아 처럼 '미국인이 아닌 사람끼리 싸움을 붙이는 부시의 전략'이다. 분단된 한국은 미국의 전략이 먹힐 수 있는 좋은 조건에 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책으로 낼 계획이라고 한다. 1946년 대구사건에서부터 여순사건과 4.19.부마사태.6월항쟁 등 한국 시민의 민주화 운동을 『알려지지 않은 반역』이라는 제목으로 묶어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 할 예정이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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