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교류의 역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부산.경남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음식으로 돼지국밥이 있다. 돼지고기와 뼈에서 우려낸 맑은 육수에 밥을 말고 고기 등 고명을 얹었다.

이 지역에선 인기가 대단해 한때 '서울엔 김밥집, 부산엔 돼지국밥집'이라는 유행어가 나왔을 정도로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선 이름조차 생소하다. 돼지뼈로 맑은 육수를 내는 음식이 한국에선 흔치 않기 때문이다.

정작 바다 건너 일본에는 돼지뼈를 우려 만든 육수를 생라면 국물로 흔히 사용한다. 특히 한국과 가까운 규슈(九州)지방이 돼지뼈 육수로 유명하다. 돼지국밥은 한.일 음식문화 교류의 한 흔적이 아닐까.

커피를 껍질째 갈아 작은 그릇에 담고 물을 부은 후 통째로 끓인 진한 커피를 '터키식 커피'라고 한다. 원래는 아라비아 반도의 음료였으나 이 지역을 정복한 터키가 이를 받아들여 제국의 각지에 전파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4백여년간 터키의 지배를 받은 발칸지역에도 이 커피가 있는데 이름이 다르다.

그리스에선 '그리스 커피', 불가리아에선 '불가리아 커피'라고 부르며 옛 유고연방 지역에선 '세르비아 커피'라고 한다. '터키식 커피'라는 이름은 절대 쓰지 않는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연상시키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입을 막고 귀를 막아도 이 커피가 아라비아에서 탄생해 터키를 거쳐 각국에 전파됐다는 역사적 사실이 변하진 않는다.

그리스인들은 긴 꼬챙이에 고기를 꿰어 구운 수블라키를 우리의 불고기만큼 즐기며 관광객들에게 자기 나라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소개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 터키인들이 즐겨 먹는 시시 케밥을 조금 바꿔 놓은 것이다. 이 음식은 원래 아랍 유목민들의 음식으로 아랍인들이 한때 통치했던 스페인 남부를 거쳐 브라질에까지 전해졌다. 브라질을 상징하는 음식이라는 슈하스쿠는 시시 케밥과 형태가 거의 같다.

아무리 감정이 좋지 않아도 서로 다른 문화권이 접촉하면 긍정적으로 교류하는 모양이다. 음식문화의 교류 역사는 바로 그 증거가 아닌가.

아키히토(明仁)일왕이 23일 고대 일본왕실의 뿌리가 백제왕실과 연결됐다는 말을 했다. 얕은 물을 사이에 두고 수천년을 가까이 지내온 이웃나라이니 당연히 수많은 교류가 있었다. 서로 잘 지내자는 뜻으로 한 다정한 말이니 한국인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타박할 필요는 없겠다.

채인택 국제부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