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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첫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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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재종(1957~ ) '첫사랑' 전문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라고 시인은 말한다. 꽃은 한겨울 독한 추위가 지나간 자리이기 때문이다. 차디찬 얼음불에 단단히 데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겨울의 고통을 지나야만 매운 향기와 고운 색깔이 터져나오도록 되어 있는 이 필연의 순환 속에서 시인은 눈과 나무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찾아낸다. 눈은 녹아 사라지고 그 슬픈 사랑에 덴 자국만이 나뭇가지에 황홀하게 꽃으로 남는다.

김기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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