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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은행 외국인 이사 제한' 검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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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은행의 외국인 이사 제한을 검토하겠다는 금감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국수주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대내외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조치의 필요성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검토해 봐야 한다.

첫째, 주주 권한인 지배구조의 선택과 이사 선임에 대해 감독 당국의 관여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의 문제다. 은행도 기업인 만큼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최상의 경영목표로 삼아야 함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불특정 다수의 예금자로부터 자금을 조성하는 특수성으로 인해 은행의 이사는 주주뿐 아니라 예금자에 대해서도 선관의무를 지게 된다.

특히 은행 파산으로부터 예금자와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공적 안전망 제공은 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로 고위험.고수익 전략의 유인을 증대시킬 소지가 있으므로, 은행 지배구조 강화로 건전성 감독기능을 보완함은 감독 당국의 책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감독 당국은 은행 지배구조의 기본 틀을 정립하고 이사와 임원의 적격성 심사를 통해 금융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둘째, 감독 당국이 이러한 권한을 보유한다 하더라도 외국인 이사에 대한 차별적 제한이 필요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이러한 제한은 외국자본의 이사회 지배가 야기할 수 있는 부정적 측면이 우려되거나, 정보 취득 등 외국인 이사의 전문성 확보와 충실의무 수행이 어려울 경우 정당화할 수 있다. 외국자본의 은행 진출은 선진기법의 확산과 경쟁 촉진, 금융 하부구조 개선, 은행자본과 자금 조달의 다변화를 통한 안정성 제고 등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유발한다.

반면 대외충격에의 노출, 자금의 급격한 해외 이전, 중소기업 및 서민금융 위축 등 부정적 효과가 수반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은행산업에 미친 직.간접적 순기능을 고려해 볼 때 건전한 외국 금융자본의 은행 소유는 지속적으로 허용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소유권의 개방과 더불어 야기될 수 있는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고 이사회의 선관의무 이행을 내실화하는 차원에서 지배구조를 일정 수준 규제하는 조치는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셋째,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이 가장 효과적일까. 예컨대 미국은 은행 이사는 재임 기간 중 미국 시민이어야 하는 국적 제한 제도와 더불어 이사의 과반수가 은행 소재 지역에 거주해야 한다는 거주 요건을 관련법에 명시해 비교적 강도 높은 외국인 이사 제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다만 외국인 이사가 소수인 한도 내에서 감독 당국이 적격성 심사를 거쳐 국적 제한의 예외를 승인할 수 있도록 하고, 거주 요건 또한 예외를 인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이사 제한 제도가 도입되는 경우 국적 제한은 원칙 불허, 예외 인정의 형태보다는 외국인 이사 비중의 상한을 설정하되 한도 내에서는 국내 이사와 동등한 수준의 자격요건을 충족하는 외국인 이사 선임을 자유로이 허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사의 충실성.전문성 문제는 모든 외국인 이사에 대해 거주 요건을 도입하기보다 국적 제한과는 별도로 이사의 일정 비중 이상이 국내 거주자로 구성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 국내 거주 이사의 구성비가 충족되는 범위 안에서 비거주 외국인 이사 선임도 가능하게 된다.

은행을 시장원리에 충실한 상업금융기관으로 변모시키고 동시에 지배구조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제고해 금융저축이 생산적으로 배분되도록 함은 향후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을 좌우하는 핵심적 과제다. 외국인 이사 제한 또한 자본의 국적에 대한 편향된 시각보다 지배구조의 효율화를 통한 은행산업의 경쟁력과 안정성 제고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함준호 연세대 교수·국제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