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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인프라에 과감히 투자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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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2001년 기준 남자 73세, 여자 80여세로 거의 선진국 수준이다. 반면 출산율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낮다. 2003년 기준 1.2명으로 일본(1.3명).프랑스(1.9명).미국(2명) 보다 낮다.

이 두 통계는 우리나라의 노령화가 매우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과 15년 뒤인 2019년에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로, 그 다음 5년 뒤에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로 접어들게 된다.

요즘 상품을 선전하는 데 흔히 들어가는 말이 바로 웰빙이다. 건강을 지키며 장수하고픈 현대인의 마음을 끌기 위해서다. 지금 50세인 남자(여자)는 앞으로 26년(32년)을, 60세인 남자(여자)는 18년(23년)을 더 살아야 한다.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하므로 기업들은 여기에 초점을 맞춰 상품을 선전하는 것이다. 개인들도 과거엔 정년퇴직하면 퇴직금을 자식에게 나눠주고 여생을 조용히 지냈는데,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퇴직 전 제2의 인생을 준비하거나, 정년이 따로 없는 상황이라서 40대부터 퇴직 이후 삶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미래를 내다보며 준비할 수 있게 된 데는 통계의 역할이 크다. 기업의 판매전략이나 개인의 삶을 계획하는 데도 이럴진대 국민의 삶을 계획하고 이끄는 국가정책을 계획하는 데 있어 통계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정작 통계에 대한 대접은 형편없는 것 같다. 정책부서에서는 통계를 필요할 때만 찾고, 없으면 왜 없냐고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정작 통계를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데는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통계는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기획 및 설계에 이어 자료 수집, 입력 내용에 오류가 없는지를 살피는 등 통계품질을 확보하기 위한 몇 가지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자료는 단순한 정보이지 통계라고 볼 수 없다. 이렇게 하나의 통계를 만들어 내려면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데 그 성과가 빠르게 나타나지 않기에 통계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하는 것 같다.

통계조사 현장 사정도 만만치 않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보다 많은 통계를 요구하는데 조사현장은 정반대로 가구나 기업체의 성실한 응답률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가계의 살림살이를 볼 수 있는 가계조사의 경우 20~30%의 가정에서 문전박대를 당한다. 사업체 대상 조사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장사도 안 되는데 무슨 통계조사냐며 소금 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다. 질이 높은 통계를 얻으려면 전국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1300여 통계조사 직원에 대한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조사환경에 대처하려면 선진 통계기법을 적용해야 한다. 지금까지 통계청이 조사통계에 의존해 왔다면 앞으로는 약간의 조사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추측.가공 통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조사해서 그 결과만을 발표하는 데 그치지 말고 결과를 분석해 정보를 얻어내고 미흡한 부분을 다음 통계 작성에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사람만을 늘려준다고 되는 일도 아니며, 질 높은 통계 인력을 청 내외에서 확보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통계청은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서 시작해 국가통계를 작성하는 데 노력해 왔다. 1990년 말 통계청으로 승격됐지만 청장의 직급이 1급 차관보급이라 정부조직에서 각 부처를 상대로 통계의 개선과 개발을 요구하는 데 힘이 부치는 게 현실이다. 선진국으로 가려면 필요한 통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하며, 그 필수조건은 국가통계 인프라부터 선진국 수준에 맞게 구축.강화하는 일이다.

최봉호 통계청 통계연구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