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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엄격한 일본 왕실 변화의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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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본의 왕실은 예부터 보수적이고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당장 여성의 왕위 계승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공개 석상에 나설 수 있는 기준도 유럽의 왕실들보다 까다롭다. 나섰을 경우 극히 절제된 표현을 써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더군다나 왕실 인사 간의 견해 차이를 공개적으로 거론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예전에 히로히토(裕仁) 일왕과 그의 동생인 다카마쓰미야(高松宮) 사이에도 티격태격이 다소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오랜 시간이 지나 그들이 쓴 일기 등을 통해 내용이 밝혀지곤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일본 왕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격변에 가깝다.

최근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차남으로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아키시노미야(秋篠宮.39)는 생일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서열 1위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에게 직접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왕세자의 지난 5월 발언 "왕실 안에 마사코(雅子.왕세자비)의 경력과 인격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에 대해서다. 아키시노미야는 이를 거론, "나도 적지 않게 놀랐고 폐하(일왕)도 매우 놀랐다고 들었다. 기자회견장이라는 장소에서 발언하기 전에 적어도 폐하와 그 내용에 대해 상의한 다음 말했어야 했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왕세자의 지난 5월 폭탄발언에 이어 아키시노미야의 이 같은 발언이 불거져 나오자 일본 내가 시끌시끌하다. 각종 추측성 분석도 떠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근 들어 일본 '왕실 패밀리'가 자신들의 생각을 '자신의 표현'으로 자유롭게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적 흐름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맞는 듯하다. 실제 대다수 일본 국민은 일련의 발언들에 대해 그다지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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