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O 표시제' 싸고 한국·미국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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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우리 정부가 소비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실시 중인 유전자재조합 농산물.가공식품(GMO) 표시제에 대해 미국 정부가 원활한 무역거래질서를 해친다며 '유감'을 표명, 양국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23일 농림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에 따르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앨런 존슨 농업담당대사(차관급)는 지난 20일 농림부와 식의약청을 잇따라 방문, 김동태 장관.양규환 청장과의 면담을 통해 한국에서 시행 중인 GMO 표시제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서 존슨 대사는 한국이 GMO 표시제를 너무 엄격하게 시행하는 바람에 양국간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제도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구분유통증명서(GMO와 비GMO로 나눠 유통시켰다는 것을 증명)를 통관할 때마다 매번 확인하도록 돼있는 조항이 미국에 지나친 비용을 부과하고 있다는 불만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처럼 우리나라 GMO 표시제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나타내는 것은 이 제도시행 이후 수입선이 GMO 비생산국으로 바뀌면서 미국산 콩.옥수수 등 농산물과 가공식품의 수입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식의약청 이상석 식품안전국장은 "미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GMO를 안전한 식품으로 여기고 있어 표시제를 도입한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에 대해 불만을 계속 나타내왔다"며 "이번 USTR 대사의 방문은 통상문제에 대해 서로 자국의 입장을 설명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식의약청은 "GMO 표시제는 국내 소비자단체 등의 요구로 오랜 준비과정을 거쳐 올 3월부터 시행 중이고 이제 실시 초기여서 규정 변경은 어렵다"는 뜻을 미국에 전했다.

이와는 별개로 식의약청은 수입 원료육에서 병원성 대장균 O-157균 등 식중독균이 검출돼서는 안된다는 '불검출 원칙'아래 균이 검출된 수입육의 통관을 거부해 왔으나 1997년 미국이 압력을 가하자 2년 만인 99년 이 원칙을 폐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GMO 표시제에 대한 미국의 유감 표명이 일종의 내정간섭이라는 비판과 함께 우리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 또다시 굴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박태균 식품의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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