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중 아버지 자수…희귀병 아들에 간 이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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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해 경찰의 수배를 받아오던 아버지가 희귀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아들을 위해 자수한 뒤 자신의 간을 나눠줬다.

21일 삼성서울병원에 따르면 김동석(金東奭.36)씨가 이날 10시간이 넘는 대수술 끝에 윌슨병 환자인 장남(11)에게 자신의 간 20%를 이식해 줬다.3만명 중 1명꼴로 나타나는 윌슨병은 체내에 흡수된 구리가 배출되지 않고 간과 뇌에 쌓여 사망에 이르는 희귀병이다.

경기도 성남에서 가전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던 金씨는 1998년 초 8천만원의 빚을 갚지 못해 부도를 낸 뒤 잠적했다. 부인과 이혼하고 채권자의 눈을 피해 전국을 떠도는 신세가 됐다. 그 후 두 아들은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지난 10월 말 장남이 윌슨병에 걸려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金씨는 곧바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아들에게 간 이식을 해준 뒤 죄값을 받고 싶다"고 자수 의사를 밝혔다.

딱한 사정을 들은 경찰도 출두를 한달 간 연기해줬고 결국 金씨는 무사히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그는 한달여간 술.담배를 끊고 체중을 10㎏이나 줄여 아들에게 간 이식을 할 수 있는 몸으로 만들었다.

金씨는 수술이 끝난 뒤 "마음이 홀가분하다. 죄값을 치르고 돌아올 때는 아들이 다시 건강하게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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