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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네트웍스, MS를 왜 공정위에 제소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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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틴틴 여러분. 컴퓨터 운영체제(OS)인 윈도를 만드는 마이크로 소프트(MS)란 회사를 아시지요. 컴퓨터를 작동시키는 기본 프로그램인 OS는 MS 제품인 윈도가 세계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리얼네트웍스란 회사가 MS를 상대로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겁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왜 남의 나라 회사들이 우리나라 공정위에서 치고받을까요.

컴퓨터로 음악이나 영화를 즐기려면 동영상 프로그램이 필요하답니다.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업체 중 하나가 리얼네트웍스란 미국 업체입니다. 이 회사가 1995년 출시한 '리얼미디어플레이어'란 동영상 프로그램은 99년까지 세계 시장점유율이 90%를 넘을 정도로 히트를 했습니다. 하지만 99년부터 웬일인지 사용자가 급격히 줄어 이제는 존재조차 희미해졌습니다. 바로 그 자리를 MS의 '윈도미디어플레이어'라는 제품이 차지했지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마이크로 소프트가 99년 5월부터 OS인 '윈도98'에 윈도미디어플레이어를 기본으로 장착하면서 리얼네트웍스 제품은 힘을 잃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따로 내려받아야 하는 리얼네트웍스 제품과 달리 MS 제품은 곧바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에서 밀려난 리얼네트웍스는 법에 호소했지요. 유럽연합(EU)에 이어 한국에도 MS의 윈도에서 윈도미디어플레이어를 제거해 달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느냐고요? 독점 때문입니다. 시장을 독차지하는 기업은 값을 마음대로 올리는 횡포를 부릴 수 있어 세계 각국은 갖가지 법규정으로 독점기업을 규제합니다. EU가 제너럴 일렉트릭과 하니웰의 합병을 막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또 독점기업이 자신들의 상품에 별개의 상품을 끼워 소비자에게 구입을 강요하는 행위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MS가 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리얼네트웍스의 주장입니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윈도에 다른 프로그램이 함께 장착되면 편리한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 경우 다른 프로그램 업체들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리얼네트웍스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독주하던 넷스케이프가 유명무실해졌습니다. 메신저 시장에서 MSN 메신저는 다른 업체들을 압도적인 차이로 제치고 있습니다. 현재 메신저 부분에서도 다음커뮤니케이션이 공정위에 MS를 제소한 상태입니다.

MS는 억울하다고 합니다. 자사 제품이 시장을 석권한 것은 품질 때문이지 윈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윈도에 포함된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제거하고 다른 회사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설치를 강제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또 윈도미디어플레이어의 경우 소리와 영상을 재생하는 기본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윈도의 핵심 구성부분이라는 주장도 합니다. OS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에 이를 제거할 경우 윈도 체제의 안정성이 깨진다는 것이지요.

쉬운 예를 들어보지요. 현재 현대.기아자동차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70%를 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시장지배적 사업자'입니다. 만일 현대차가 자사제품에 핸즈프리를 기본 장착해 출시한다면 중소 핸즈프리 업체들은 모두 망할 것입니다. 소비자들의 선택권도 줄어들게 됩니다. 이럴 경우 제재가 불가피하겠지요. 하지만 자동차에 엔진을 장착해 판다고 공정위가 제재할 수는 없습니다. 엔진은 자동차의 기본 구성요소이기 때문이지요. 윈도미디어플레이어가 자동차의 '핸즈프리'냐 '엔진'이냐 하는 것이 바로 이번 다툼의 핵심입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공정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 같으냐고요? 예측하기 어렵지만 현재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지난 3월 있었던 유럽집행위원회(EC)의 결정입니다. EC는 리얼네트웍스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해 MS에 4억9700만유로(6억4400만달러)의 벌금 부과와 함께 윈도미디어플레이어를 윈도에서 분리하라고 명령했지요. 하지만 이 결정에 MS가 반발해 현재 유럽 법원이 심리 중에 있습니다. 또 윈도미디어플레이어를 아무 문제없이 분리할 수 있느냐를 놓고 기술적인 논란이 남아 있어 EC의 분리 명령이 이행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마이크로 소프트는 웹브라우저 때문에 미국에서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넷스케이프의 몰락이 MS의 횡포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면서 한때 회사 분리 명령까지 받았습니다. MS가 윈도를 가지고 있는 한 계속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어 윈도를 운영하는 회사와 다른 응용프로그램(application)을 만드는 회사를 따로 운영하라는 것이었지요. 결국 항소심에서 뒤집혀 MS의 분할은 없는 일로 됐지만 아직도 MS의 독점 논란은 계속되고 있답니다.

여러분, 컴퓨터를 한번 보세요. 여러분이 쓰고 있는 인터넷 익스플로러 같은 프로그램 이면에 이렇게 복잡한 스토리가 숨어 있다니 놀랍죠?

윤창희 기자

*** 마이크로 소프트의 반독점 분쟁 일지

1998년 미국연방법무부, MS가 웹브라우저 부분에서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며 소송 제기

1999년 리얼네트웍스, MS에 대해 EU에 제소

2000년 6월 7일 잭슨 판사, MS 회사 분할 명령

6월 28일 미 항소법원 MS 분할명령 취소, 독점 위반은 인정

2001년 9월 다음커뮤니케이션, 한국 공정위에 MS 제소.

2004년 3월 EC, MS에 6억여달러 벌금 부과와 함께 윈도에서 미디어 플레이어 분리 명령

4월 다음, MS에 대해 100억원 손해배상 소송 서울중앙지법에 제기.

11월 리얼네트웍스, MS에 대해 한국 공정위에 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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