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공적자금 회수율만 따지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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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복숭아와 밤은 삼년, 감은 팔년이라는 속담이 있다. 복숭아나 밤나무는 심은 지 삼년이 지나야 먹을 수 있고, 감나무는 팔년이 지나야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세상 모든 일이 성숙해지는 데 적절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중요성과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꾸준한 노력의 필요성도 함축돼 있을 것이다.

최근 감사원의 공적자금과 관련한 특감 결과 보고가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이고 보면 철저한 관리와 조속한 회수의 당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적자금의 진정한 의미가 희석되고 문제의 본질을 비껴가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공적자금을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의 몇가지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첫째, 어느 나라에서나 위기극복과 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은 비용의 성격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투입된 총 1백50조원의 공적자금은 지난 30년간에 걸친 고도성장기에 누적된 구조적 모순의 해소, 즉 기업부실을 털어내고 금융시스템을 복원시키기 위해 사용된 불가피한 기회비용이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과속으로 장거리 주행을 한 뒤 소요되는 자동차 정비 비용이라고나 할까. 때문에 자금의 회수만을 우선으로 하는 민간투자와 구별돼야 하며 공적자금 투입의 순기능은 사실상 97년 환란으로부터의 빠른 회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적자금의 긍정적 효과가 없었다면 98년 이후의 높은 경제성장률은 기대할 수 없었다.

둘째, 공적자금 회수에 대한 기대와 목표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최근 서울을 방문한 초프라 IMF 한국과장의 말처럼 공적자금을 모두 회수하겠다는 착상은 출발부터 무리다. 미국은 80년대 중반의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공적자금을 부었으나 회수율이 아직까지 40%에 못미치고 있다. 80년 말 버블경제 붕괴 이후 지속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해 온 일본의 경우도 지금까지의 회수율이 20%를 넘지 못하고 있다.

향후 회수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은 당연히 우리 모두의 몫이다. 하지만 지난 3년간 근 30%의 회수율을 보이고 있는 국내 공적자금 관리성과가 그리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공적자금 회수의 가속화를 위한 정부소유 금융기관의 민영화 촉진은 원칙적으로 옳다. 그러나 멕시코를 포함한 위기 경험국의 사례에 비춰볼 때 조기 민영화가 능사는 아니며 '제 때에 제 값을 받고 제대로 작동되게 하는' 민영화가 더 바람직하다.

셋째, 공적자금 운용에 좀 더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공적자금 자체가 국가재정에 부담이 되는 것이고 보면 부실 기업주의 범법행위나 관련 금융기관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를 철저히 규명하고 시정해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마녀사냥식 책임론이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정상적인 업무를 저해하는 수준으로 번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공적자금 회수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련 금융회사의 수익성과 경쟁력이 높아져야 한다. 금융업의 경쟁력은 사람에 달려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공적자금 투입기관 임직원들의 사기진작과 주주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영체제의 확립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이것만이 공적자금 회수 극대화의 첩경이다.

전광우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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