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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 칼럼] 두가지 먹이사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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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먹이사슬에는 채엽(採葉)먹이사슬(grazing food chain)과 해체균(解體菌)먹이사슬(decomposer food chain) 두 가지가 있다. 전자가 살아 있는 이승의 먹이사슬이라면 후자는 모든 죽은 자가 가는 저승에 설치돼 있는 먹이사슬이다.

해체균 먹이사슬은 죽은 유기물질을 더 간단한 분자 또는 아예 무기물질로 분해하는 것이다. 이런 해체의 진행을 우리는 부패라고도 부른다. 냄새가 몹시 나는 가스와 함께 열이 발생한다. 죽은 것이 있는 곳에는 그것이 무덤이든 퇴비더미든 하수도든 저승의 살아 있는 주인인 부패균=해체균들의 거대한 성찬(盛餐)이 벌어진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먹이사슬은 채엽먹이사슬이다. 이 사슬은 식물, 초식동물, 약한 육식동물, 강한 육식동물, 이렇게 보통 네개의 계층으로 구성된다.귀(貴)라고 함은 전제 왕정 시대의 왕에서 말단 관리까지에 이르는 정치.관료 권력을 말한다. 채엽먹이사슬의 육식동물들에 해당한다.

*** 정부에 병 준 공직자 부패

부(富)는 대체로 생산을 통해 모으지 않으면 폭력에 의해 약탈하는 수밖에 없다. 나라 사이의 약탈은 전쟁을 통해 이뤄진다. 전제왕정 시대의 귀가 행한 한 나라 안의 힘없는 백성으로부터의 약탈은 부패라기보다 가렴주구(苛斂誅求)라고 일컬어져 왔다. 귀의 권력에 의한 과중한 세금, 사적(私的) 수탈이 여기에 포함된다.

정치는 전제왕정, 경제는 공전제(公田制) 농업이던 지난 시대의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귀는 이렇게 해서 부를 당연히 겸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뀐 지 오래다. 전제왕정 대신 민주주의가, 공전제 농업 대신 사유재산제를 기초로 하는 산업적 시장경제가 됐다. 적어도 한 국가 안에서는 생산만 허용되고 모든 약탈은 금지됐다.

민주주의란 것은 정치와 관료 권력이 법이라는 권력 자신의 오랏줄로 자박(自縛)해야 함을 말한다. 이것을 법의 지배라고 우리는 부른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사유화의 반대말이다.

시장 경제는 부가 사적 권리일 때만 제대로 작동하는 그런 경제다. 이 또한 권력의 반대말이다. 그래서 귀는 공복(公僕)의 자리로 내려 앉아야 했다. 약한 자의 고기를 먹던 육식동물의 자리에서 밀려나와 한낱 서비스 생산에 종사하는 초식동물이 돼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의 종언을 수용하기를 마다하는 시대착오적 공직자들이 경제를 아직도 전제적 농업사회의 채엽먹이사슬인 줄 알고 거기에 육식동물로서 가담하는 것이 공직자 부패다.공직자의 부패는 정부를 병에 걸리게 한다. 그런데 이 병을 죽음으로 직결 시키는 행위자가 한국에서 무더기로 나타났다. 이승의 부패를 저승의 부패와 직결시킨 것이다.

해체균 집단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저승에서 이승으로까지 진출한 것이다. 이들은 폭력조직을 겸한 벤처기업, 증권 관련 회사, 건설회사를 차리거나 정당과 그 주변 조직에 바이러스처럼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살아서 이승에서 스스로 부패한 자들을 죽은 다음 저승에서 치러지는 해체와 똑같은 화학 과정에 집어넣었다.

*** 해체균이 바이러스처럼

이들은 청와대.검찰.경찰.국정원.금융감독원.국회 사람들을 해체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밖에 어떤 기관, 어떤 사람이 또 더 있는지는 냄새와 발열(發熱) 때문에 속속 드러날 것이다. 그래놓고는 금융기관에서 막대한 돈을 꾸고 증권시세 조작을 통해 일반투자자의 돈을 긁는다. 이 돈의 일부는 해체 작업장에 순환시켜 공정(工程)에 필요한 효소로 사용한다.

이 끔찍한 화학작용에 그러나 유용한 면도 있다는 것이 생물학의 발견이다.시체에 붙어 있던 거의 모든 병원균.포낭체.알.기생충을 이 과정이 죽이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무덤.수채.퇴비더미는 정화된다. 나는 김대중 정부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보는 것은 착오라고 판단내렸다.

아, 이 돌연변이 해체균의 등장에 김대중식 '햇볕정책' '지역 등권주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일조한 바가 없는 것인가.

강위석 `emerge새천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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