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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에 산업인력공단 취업문 뚫은 늦깎이 신입사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시에 합격한 것도 아니고…" 최영조(37)씨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쑥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웬만한 취업문이 고시합격 못지않은 좁은 문이고, 게다가 서른 일곱 살 늦깎이 신입사원이 되기란 더더욱 좁은 문이라는 것을. 최씨는 지난달말 산업인력관리공단의 신입직원 공채에 합격했다. 올해부터 나이와 학력 제한이 폐지된 덕분에 응시가 가능했다.

"시험보기 직전에 알았어요. 올해초 나온 취업정보서적에도 응시연령이 28세인가 그랬는데, 의아했죠. 인터넷으로 접수를 하면서도 접수가 안되는 게 아닐까 했을 정도에요. 연령제한이 없는 경우를 그동안 못봤으니까. 정말 시험을 치를 수 있게 되서 오히려 놀랐죠. "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최씨는 군복무를 마치고 1993년 무렵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경제학 전공을 살려"국가 경제를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인지" 기여하고, 직업적 안정도 이루고 싶었다. 처음에는 남들보다 때이르게 1차에 합격했지만, 2차 시험에서 거듭 고배를 마시고, 다시 1차부터 응시하는 일을 반복하다 어느새 넘기 힘든 벽에 부딪혔다. 32세, 군복무 기간을 인정받아도 35세라는 응시제한연령에 다다른 것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같은 거죠. 몇 년을 공부해서 실력이 보인다 해도 합격이란 열매가 확실히 보이지 않는 독이죠. 단번에 '고시'라는 독에 물을 넘치게 채워야 하는데…."

청춘을 바친 꿈을 나이 때문에 접었지만, 차선의 길을 찾는 데도 그 나이가 다시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일반기업은 대개 서른 안쪽으로 지원자격이 제한돼 생각도 못해볼 처지였다. 상대적으로 조건이 너그러운 공기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올해 한 지방공기업에 응시해 필기시험에 붙고 면접을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같이 면접을 본 사람 중에 저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번이 면접만 세번째라고 했어요. 면접관이 그 분에게 왜 떨어졌냐고 묻더니 그러더군요. 우리가 대단한 능력 가진 사람을 뽑으려는 게 아니다, 여기 온 다른 사람보다 열 살쯤 나이차이가 나는데 원만하게 지낼 수 있겠냐, 상사가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면 어떻느냐…"

최씨는 결국 최종합격자에 들지 못했다. 그는 "최종 선발인원의 다섯 배가 면접에 들어갔다"면서도 '나이'를 원망하지 않았다. 대신 "연령 제한이 형식적으로는 완화돼있어도,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차분한 말투의 최씨는 "응시연령을 제한하는 것을 100% 잘못이라고 하긴 어렵다"고 했다. "의도한 쪽에서 보면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죠. 계급사회니까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하고…. 고시의 경우 응시연령을 제한한 것은 공직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젊은 인재가 많이 들어와야 한다는 취지겠죠. "

그러나 곧 속내를 드러냈다. "나이는 문제가 안된다고 봐요. 어떤 조직 문화냐가 중요하죠. 권위적이고, 계급적인 기업문화라면 나이가 중요하겠죠. 하지만 군대도 더이상 고참이라고 신참을 종 부리듯 하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나이 때문에 규율이 안서서 조직이 안돌아간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권위주의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돼죠. "

최씨는 독학으로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땄다. 입사지원서마다 일일이 다 적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따놓은 자격증만도 공인중개사.선물거래사.투자상담사.전자상거래관리사 등 10여개에 이른다. "욕심이 많아서"라고 했다. 재경직 행정고시를 준비했으니 합격하면 두루 알아야 할 것이란 생각도 있었고, 고시공부를 하면서 "시험으로 따는 자격증이라면 다 딸 수 있을 것 같은"실력이 된 덕도 있었다. 그는 고시준비기간에 대해 "내 자신의 선택이었고, 정말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제가 합격됐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그런(연령제한이 없는)데가 있었냐고요. 오래 공부하는 사람들중에는 사실 이름만 고시생이지, 고시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경우도 많아요. 딱히 다른 게 할 게 없으니까. 사회적으로도 마이너스죠. 능력이 있어도 순전히 나이 때문에 막혀버리는 거죠. "

그는 "국가인적자원의 능률적인 활용을 위해서" 입사연령 제한이 완전히 폐지는 안되더라도 더 완화되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의 합격과정에서도 나이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학교를 마치고 남들보다 늦게 군대에 갔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마음의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냐고 얘기했습니다. "

최씨는 공단에 입사하면 해외취업을 알선하는 업무를 하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도 "여러 방면에서 견문을 넓히는 기회를 많이 갖고 싶다"는 포부가 여느 신입사원과 다르지 않았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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