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TV·영화 폭력장면 청소년 노출에 아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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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의학과 신경과학 분야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에 지난주 이색적인 연구 논문이 실렸다.

미국의 의사.심리학자 등 7명이 영화 속 흡연 장면이 실제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조사한 것이었다.

연구진은 인기를 끌었던 영화 중 6백1편을 선정한 뒤 흡연 장면이 나오는 빈도에 따라 네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그리고 9~15세의 청소년 4천9백여 명을 상대로 그들이 본 영화와 흡연 경험을 조사했다. 이 두 가지의 상관관계가 연구팀의 관심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1백50개 이상의 흡연 장면을 접한 학생들은 어린 연령대임에도 50장면 이하를 본 학생들에 비해 7배 가까운 흡연율을 보였다. 나이.성별.교육 및 경제 수준 등은 결과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 실험을 통해 연구진들은 "오차변수를 고려하더라도 일단은 영화 속 스타들의 흡연 장면이 청소년들의 흡연 욕구를 증가시킨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결론내렸다.

'모방 학습'에 대한 연구는 심리학의 주요 연구과제 중 하나다. 그러나 흡연에 관한 한 대중매체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직접적 영향에 관한 실험이 거의 없던 상황이라, 이 논문의 결과는 더 주목받고 있다.

이 논문을 접하고, 과연 이 결과가 흡연에만 한정되는 얘기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올해는 '친구''조폭 마누라''달마야 놀자' 등 조직폭력배를 소재로 한 영화가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면서 '조폭 신드롬'이 강하게 일었던 한해였다. 이 열풍은 안방극장에도 밀려 들어 최근 우리 TV에선 가족 시청 시간대에 회칼이 등장하는가 하면 피가 쏟아지는 장면도 버젓이 방영되곤 한다.

영화에서, TV에서 이처럼 '조폭'이 스타와 동일시되면서 미화되는 것이 우리 청소년들의 잠재의식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요즘 중.고교 문구점에서는 1회용 문신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바늘로 피부에 문신을 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논문의 결론과 우리 현실의 유사함이 우울할 뿐이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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