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쟁점과 전망-학술] "네가 틀렸다" 지식사회 대균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올 한해 지식사회는 논쟁으로 달구어졌다.지난해 총선과정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지식사회의 내부적 차이는 올해 걷잡을 수 없이 불거졌다.

특히 언론사 세무사찰과 맞물려 야기된 '홍위병'논쟁은 지식사회에 지울 수 없는 자욱을 남겼다. 9.11테러에 대한 태도에도 은밀히 숨어있는 이런 차이는 내년 대선을 맞아 새로운 소재를 찾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지식사회의 위기의식도 한층 고조되었다.

TV 드라마에서 교수가 속물로 희화화되고, 도올 김용옥이 강단 지식권력을 비판하는 가운데 지식사회에서는 내부적 성찰을 통한 탈바꿈이 필요하다는 자성론이 일기도 했다.

김용옥 담론 김용옥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피상적으로는 그의 논어 해석을 놓고 일어났지만, TV드라마 '아줌마'의 '장진구' 이후 회자된 지식사회의 허구성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때 논어나 노자를 둘러싼 해석의 차이와 도올의 태도에 대한 비판은 시비의 빌미일 뿐 그 밑바탕에는 바로 지식사회의 권력투쟁이 숨어있었다.

논쟁은 그 밑바탕에 있는 '도올 담론'의 핵심을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채 외관상 강단학계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런 피상적 승리 뒤에 인문학은 죽음의 고비를 넘고 있었다. 강단 지식권력의 승리는 이들의 자기 방어 속에 갇혀있던 인문학을 역설적으로 고사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그나마 건진 것이 있었다면 도올 이후 '교수신문'을 중심으로 전개된 '동양학 논쟁'이었다. 올 6월께 서양철학자와 동양철학자 사이에서 벌어진 이 논전은 동양담론을 한단계 성숙시켰다고 평가를 받았다.

홍위병 논쟁 무엇보다 지식사회의 위기와 빈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은 '홍위병'논쟁이었다. 정부의 언론사 세무사찰로 촉발된 이 논쟁에 많은 학자들이 가담해 급기야 '지식인의 책무'에 대한 논전이 일었고,보수와 진보 세력간의 심각한 알력을 보였다.

그 결과는 지식사회의 자기 파괴였다. 정치사회와 달리 지식사회가 가져야 할 공론의 규율을 포기함으로써 지식사회는 정치사회에 종속돼 자율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지식사회가 상업적 선동주의에 의존함으로써 갈등을 증폭시켜갔다.

일본 교과서 올 상반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은 우리 역사학계가 오랜만에 단합된 힘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교과서의 채택률이 10%를 넘기지 못해 이런 단합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숨길 수 없는 어떤 위기의식이 침잠해 있었다. 국내 민족주의 성향을 비판하고 있는 서구의 탈민족주의적 경향을 애써 외면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역사학계의 단합은 오히려 과잉반응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성찰 극단이 선동주의적으로 서로 맞부딪친 상황에서 숨을 죽여야 했던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들이 '성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가을부터였다.

김우창(고대.영문학)교수가 『당대비평』(삼인사刊) 가을호 권두 에세이 '진실.도덕.정치'라는 글에서 '사실의 규율'을 포기한 지식사회가 도덕의 과잉과 정치화로 '일상적 파시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본격 시작된 이후 '성찰'은 중심 화두로 자리잡는 듯했다.

테러 그러나 9.11테러는 곧 쟁점을 전환시켰다. 드러내 놓고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테러를 계기로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민감한 화두를 놓고 생각이 갈렸다.

이것의 폭발력을 잘 알고 있는 지식사회는 노엄 촘스키, 에드워드 사이드, 새뮤얼 헌팅턴의 입을 빌려 대리전을 전개했다. 그렇지만 지식사회는 예전의 권위주의 시대와 달리 미국을 '우리'의 시각에서 보기 시작한 뚜렷한 변화들이 감지되었다.

전망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미 일부 정치지향적 지식인은 줄서기에 나섰다. 대선으로 지식사회 내부의 차이는 일단 두드러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북한''개혁' 등 다양한 소재가 정치적 사안으로 등장할 경우 지식사회 내부의 차이는 곧 새로운 논쟁을 촉발할 것으로 보인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정재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