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일본인 납치의혹 조사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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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북한이 17일 일본인 납치 의혹 문제에 대한 조사를 중지하겠다고 밝혀 북.일 관계가 급속히 악화될 조짐이다.

북한 조선적십자회는 이날 평양방송을 통해 "일본측이 요청한 행방불명자 소식 조사사업을 전면 중지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일본측이 제기한 7건 10명의 일본인 납치 의혹 조사로 1999년 말 북.일 적십자회담에서 합의됐으며, 이후 7년여 만의 수교교섭 재개의 길을 열어주었다.

'납치 문제'는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협상에서 내걸고 있는 최대 현안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이 사업을 중단하겠다는 북한의 태도는 납치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면서 양국 관계를 더욱 냉각시킬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대일(對日) 강경 태도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산하 금융기관의 부정대출 사건과 관련한 일본 경찰의 조총련 강제 수사에 대한 맞불놓기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조총련 수사가 대북자금 지원 차단 등 북한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고 고강도 처방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조총련에 대한 수사는 내년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60회 생일과 김일성 주석의 탄생 90주년'행사를 치르는 북한의 자금조달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북한으로선 조총련 수사를 '테러지원국'에 대한 압박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본 정부는 북한에 대해 일단 유감을 표명하고 "북한의 진지한 대응을 끈질기게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자민당 내 보수파들은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의원은 "북한 스스로 테러국가임을 천하에 공언한 것으로 일말의 양심도 없다"고 비난했다. 일본 정부는 이같은 분위기를 내세워 대북 식량지원에 소극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의 이번 조치로 외교적 고립은 더 커질 전망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중단에 이어 인도주의적 대외교섭의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에서 드러난 북한의 강경 고립노선은 앞으로 남북, 북.미 관계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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