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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흑자시대] 上.<메인>'환자전액부담 제도' 없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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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001년 재정이 파탄 나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건강보험이 3년 만에 700여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재정이 좋아지자 가입자들은 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하자고, 의료계는 수가(酬價.의료행위의 가격)를 올려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흑자시대에 걸맞게 건강보험을 어떻게 손질해야 할지 세 차례에 걸쳐 모색해본다.

무통분만 진료비를 의사들이 기준보다 많이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30일에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는 "돈을 돌려받을 방법을 알려 달라"는 민원이 폭주했다.

환자들은 "의사들이 그럴 수 있느냐"고, 의사들은 "수가가 워낙 낮아서"라고 항변한다. 불신의 골이 깊어진다.

이 같은 사태의 배경에는 우리 건강보험 제도의 어두운 단면이 깔려 있다.

'100분의 100 보험'이라는 제도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건보재정난이 만들어낸 기형아다.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는 "건보 재정이 흑자로 돌아선 만큼 우선적으로 100분의 100 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관들이 정부에서 정해준 수가대로 받되 돈은 환자가 다 부담하는 제도가 100분의 100이다. 건강보험이 한푼도 지원하지 않는다.

9월 말 현재 이 제도를 적용받는 진료 행위가 전체의 8.3%인 424개, 약품이 60개(0.2%), 치료 재료가 941개(11.1%)다.

100분의 100은 환자가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점에서는 비보험 진료와 같다. 다만 100분의 100은 수가가 정해져 있어 맘대로 받지 못하지만 비보험 진료는 병원들이 가격 제한을 받지 않는다.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이나 초음파 진단이 대표적인 비보험 진료다. 병원에 따라 가격이 서너 배 차이가 난다.

100분의 100은 의료기관이 수가 이상으로 돈을 받은 경우 환자가 되돌려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게 ▶무통분만▶소변의 적혈구 분포 검사▶독감 바이러스 항체 검사▶요실금 전기자극 치료 ▶부정교합 아래턱 성형술 등이다.

문제는 이 제도가 보험 전환을 전제로 생겼다는 점이다. 2000년 7월 이전에 병원들이 임의로 치료기술 등을 개발해 시술하자 정부는 불법, 의료계는 환자를 위한 합법이라고 맞섰다.

그래서 그런 행위들을 모두 신청받아 보험대상과 비보험대상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보험을 적용할 필요성은 있지만 고가이거나 많은 환자에게 쓰이지 않는 것들은 100분의 100으로 분류했다. 그러다 2001년 초 재정이 파탄나면서 보험으로 전환하려는 계획은 물 건너 갔다.

장기이식환자 대량 수혈 행위 등 두 가지만 보험으로 전환했을 뿐 2001년 1월 337개에서 올해 9월 1425개로 4.2배나 늘었다. 거꾸로 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병원들은 "건강보험이 한푼도 지원하지 않으면서 왜 가격을 통제하느냐"고 불만을 표시해 왔다.

일부 병원은 무통분만뿐 아니라 단백아미노산제 등 일부 100분의 100 진료비를 수가보다 높게 환자에게 부담시켜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들은 "우리가 돈을 다 부담하는데 왜 보험으로 분류하느냐"고 비판한다. 정부가 100분의 100을 보험이 되는 항목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관계자는 "무통분만을 마취행위로 볼 경우 마취과 전문의 초빙료와 마취료 8만6500원을 별도로 인정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지금은 마취가 아니라 통증 조절로 간주해 그 돈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일부 의사는 마취과 의사를 부르지도 않고 그 돈을 받아왔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제도를 변경하는 절차가 있는데도 의사들이 시술을 안하겠다는 것은 환자를 볼모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100분의 100 제도는 의학적 타당성 등을 따져 보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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