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학협력 등 이공계 유인책 마련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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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인구가 많아 국민총생산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10위지만 1인당 소득은 꼴찌에 가깝다.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으며 경제적 수치로 보아 소년기쯤에 해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대학입시를 보면 상위권 대학의 공대.자연대의 경쟁률이 모집단위 중 최하위권이다.몇몇 대학은 정원에 미달된 곳도 있다. 올해 수능시험에서 자연계 응시생 비율이 전체의 27%로 1995년의 자연계 응시율 43%에 비해 엄청나게 감소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인문사회계열과 이공계 중 의.치대의 경쟁률은 높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외환위기 사태 이후 우리나라 국민의 근로의식에 큰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 번 입사하면 평생 직장이던 대기업들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아래서 줄줄이 퇴출됐다. 그 빈 자리를 성과 지상주의의 벤처기업 혹은 외국계 기업들이 메웠다. 직장의 안정성이 없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안정된 직장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이다. 나이가 든 부모들은 자식들이 가장 안정된 직업 중 하나인 의사가 되길 바라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생들의 진로를 부모가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대 등에 학생들의 지원이 몰리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안정지향의 성향을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있다.

60년대 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생겼을 때 연구원의 급여는 대기업의 세배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 최고급 아파트가 지급되고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등 최상급 대우를 받았다. 이것이 이공계 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때 이공계에 진학한 우수 학생들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한 바는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스위스의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우리나라 젊은이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도는 조사 대상 49개국 가운데 28위에 그치고 있다. 싱가포르.대만이 5위 이내인 점을 생각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원래 흥미가 없을 경우 전망이 좋지 않은 이공계를 학생들과 부모가 택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면 우리나라 산업은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지 모른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산업 중 금융 등 3차산업이 특히 낙후돼 있다고 진단한다.그렇다면 당장 우리가 기댈 곳은 2차산업뿐이다. 제조업마저 주저앉으면 우리 경제엔 미래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강한 제조업의 중심에는 기술과 인력이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우수 학생을 이공계로 유도하기 위해 과감한 정책을 펴야 한다.

우선 교육과정을 전면적으로 개편해 초.중.고에서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 학생들이 학습에 흥미를 갖도록 암기 위주가 아닌 실습과 참여 위주의 교과과정을 마련하고 투자를 늘려 기자재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

개발독재 시절과는 달리 정부가 안정된 직장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이공계 학생들에게 병역특례를 과감하게 확대하는 등 가능한 한 모든 유인책을 검토해 조속히 시행해야 할 것이다.

대학입시도 현재의 획일적인 규제에서 벗어나 대학별로 자율화.차별화해야 인문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현재 상황이 바뀔 것이다.장기적으로 정부는 국가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유치할 수 있도록 산학협력의 확대 등 범부처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우일 <서울대 교수 기계항공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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