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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나이'의 거품을 걷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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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경제성장에서 얻는 가장 소중한 결실은 무엇일까? 흔히들 '더 잘살게 되는 것'정도로만 생각하기 쉽다. 필자가 대강 계산해본 결과 1960년대 초 본격적인 경제개발에 착수한 이래 지금까지 물가 상승과 인구 증가 등을 감안한 1인당 실질소득은 지난 40년 동안 거의 10배 정도로 늘어났다. 이는 분명히 대단한 성과다.

그런데 실은 단순히 더 잘사는 것보다 더 큰 결실이 있다. 1960년대 초반까지 56세에 불과하던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이 지금은 77세까지 늘어 이미 선진국 수준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경제개발의 결실로 향상된 생활수준과 더 긴 수명이란 성과를 거둔 것은 근대화에 성공한 모든 사회의 공통된 경험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에서는 18세기부터, 미국과 다른 서유럽 선진국에서는 19세기에, 그 이외 국가들은 20세기에 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평균수명이 연장됐다.

문제는 이러한 결실과 근대화에 성공한 모든 국가들이 직면한 고령화의 제반 문제들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라는 것이다.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의 생산력 저하와 연금 수급의 불균형이라는 난제가 있다. 또 은퇴한 고령자의 입장에서 보면 은퇴 후의 생계도 문제이려니와 '여생'이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너무도 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경제성장이 남달리 빨랐듯이 고령화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경제는 선진국 진입을 아직 기다리는 단계에 있으면서도 고령화 문제는 이미 선진국들과 같은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고령화 문제에 직면하여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그후 다시 67세 이상으로 연장한 지 이미 오래다. 반면 같은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이후로 정반대로 퇴직 연령이 50대 초반까지 점점 앞당겨졌다. 필자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추세를 계속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런데 최근의 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근로자는 평균적으로 27세에 일을 시작해 54세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그 이후에는 68세 정도까지도 단순직이나 자영업 등의 형태로 계속 일을 할 의사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근로자들도 선진국 근로자들만큼 오래 일을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고, 실제로 선진국보다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이 높은 셈이다.

그러나 생애 중 일할 의사가 있는 41년 중에서 3분의 2인 27년만 주된 일자리에서 일하고 3분의 1인 14년은 근로자의 생산성을 최대로 살리지 못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다. 고령층 고용을 늘리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강구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옳은 방향이다.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나이'라는 거품이다. 고용주의 관점에서는 나이가 많은 근로자의 생산성이 연공 위주의 보수에 미치지 못하는 한 고용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연령에 따른 체면과 품위를 보장할 수 있는 보수 수준을 기대한다.

생산성과 직결되지 않은 보수와 경비는 대부분 거품으로 간주할 수 있다면, 연령에 따른 대우는 어찌 보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거품 중 하나이고,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나이에 따른 대우는 역설적으로 고령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가장 중요한 걸림돌인 것이다. 유교적 가치관이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서 연령을 중시하고 우대하는 관습을 바꾸기란 쉽지 않을 뿐더러, 무조건 생산성 위주로 경제나 사회를 운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연공에 비해 생산성 쪽으로 무게를 더 두도록 인식의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우리 경제성장의 두 가지 결실을 모두 거둬들일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

김종면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