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쟁 싫어하는 민주국가, 전쟁 이기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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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호 02면

국제정치학자들이 1980년대 중반부터 활발히 논의해 온 ‘민주평화론’에 따르면 민주국가들끼리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반면 정전협정이 체결된다고 하더라도 민주 대한민국과 비민주 북한 간에는 전쟁 발발 가능성이 상존한다. 민족상잔을 막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정착에서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북한의 민주화가 필요한 이유다.

민주국가와 비(非)민주국가가 싸우면 어디가 이길까. 얼핏 생각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비민주국가가 유리할 것 같다. 민주국가는 권력이 분산돼 있고 군인들이 자유로운 문화에 익숙해 군대문화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권력이 집중돼 있고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전체주의국가나 독재국가가 더 유리할 것 같다.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마저 전쟁 수행의 면에서는 민주국가가 열등하다고 봤다.

이러한 인상과는 달리 민주국가가 이긴다는 게 연구 결과다. 에머리 대학 댄 라이터 교수와 미시간 대학 앨런 스탬 교수에 따르면 전쟁에서 민주국가가 승리할 가능성이 압도적이다. 80%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인 투키디데스도 민주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이 더 탁월하다고 봤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의 결과와 관련, 민주 아테네가 과두정치의 스파르타에 진 것이 아니라 동맹 차원에서 아테네 동맹이 스파르타 동맹에 진 것으로 봤다.

제2차 세계대전과 동서 냉전의 결과만 봐도 독일·일본이나 공산진영 국가들이 겉으로는 더 강해 보였지만 승리한 쪽은 민주국가, 민주 진영이었다.

민주국가가 경제·산업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전쟁도 잘하는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이유를 든다. 민주국가의 군인들은 자기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책임 의식을 가지고 싸운다. 민주국가의 군인들은 자유 속에서 훈련된 창의력을 전쟁에서도 발휘한다. 현대전에서는 명령 이행뿐만 아니라 창의력이 중요하다. 민주국가의 군대는 충성심·당성과 같은 정치적 고려가 아니라 능력을 위주로 장병을 평가한다.

승산이 높다 하더라도 민주국가는 전쟁을 가능하면 회피한다. 유화 정책을 잘 구사한다. 이런 민주국가의 유화적인 정책은 비민주국가의 오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민주국가가 약하기 때문에 유화적으로 보이는 정책을 펴는 게 아니다. 우리만 해도 그렇다. ‘퍼주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남한 정부가 북한에 유화적인 자세를 견지해 온 것은 대한민국이 약해서가 아니라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고 북한이 중국·베트남처럼 개혁·개방으로 잘살게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긴장이 조성된 지금, 남북한 모두 민주국가가 전쟁수행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점을 상기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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