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커버스토리] 계란 품질 등급 매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해초란.DHA란.참숯란.인삼란.황토란 등 품질을 내세운 계란이 많이 나왔으나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 어느 것이 좋은지를 가릴 수 있는 기준이 없고 대부분이 생산일자를 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강광파 이사는 계란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농림부는 12일부터 대구경북양계조합에서 계란품질등급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정부에서 파견한 품질검사관이 샘플을 검사해 계란의 품질을 판정한다.

그러나 생산자단체인 대한양계협회는 농가가 자율적으로 품질검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계란품질등급제가 제대로 뿌리 내릴지 불투명하다.

◇ 양계 농가 반발로 도입 늦어져=원래 계란품질등급제는 지난 10월에 도입할 예정이었다. 시범 실시 대상 양계조합도 한곳이 아닌 네곳으로 정했었다.

지난 3월 계란등급제에 대한 공청회를 열 무렵만 해도 소비자는 물론 생산자들도 그 필요성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1999년 태국산 계란이 수입되면서 계란값이 크게 떨어진 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품질등급제를 실시해 수입산 계란과 차별화를 꾀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태국산 계란은 품질등급제 도입이 거론되자 수입업자들이 배로 운송해야 하므로 신선도를 유지하기 어렵고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더 이상 들여오지 않았다.

그런데 농림부가 막상 계란등급제를 도입하려 하자 일부 영세 양계농가들을 중심으로 반대했다. 품질등급을 매기면 영세 농가는 대규모 사업체에 밀려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대한양계협회는 지난 9월 ▶계란등급 판정을 원하는 농가는 자율적으로 직접 판정하도록 하고▶품질.무게를 모두 표시하는 현 등급에서 품질등급은 빼고▶등급판정 일자(생산날짜)대신 유효기간만 써넣자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사실상 품질등급제에 반대했다.

한 양계업자는 "품질등급제의 취지는 좋지만 품질등급과 등급판정 일자를 표시할 경우 안 팔리는 계란은 갈수록 처분하기가 곤란해진다는 걱정이 앞섰다"고 털어놓았다.

농림부가 양계업자의 반발에 밀리면서 품질등급제 도입은 미뤄졌고, 결국 한곳에서만 실시하기로 계획을 축소했다. 올해 2억9천만원의 예산을 확보해 5명의 검사관을 해외 연수까지 보낸 그동안의 준비 작업이 무색하게 됐다.

◇ 값싼 수입산 막으려면 도입 서둘러야=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가입한 중국은 세계 최대의 계란 생산국이다. 한국과 가까운 산둥(山東)성에 홍콩 자본을 끌어들여 대규모 양계단지와 계란가공 공장을 세우고 있다.

값싼 중국산 계란이 몰려오면 국내 양계산업은 가격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 하루 평균 2천8백만~3천만개의 계란이 유통되는데, 2천5백여 양계농가의 상당수가 영세하다.

품질등급제는 계란의 껍질과 난(卵)의 형태 등에 따라 품질을 4등급, 중량을 5등급으로 세분한다. 생산일자를 표시해 소비자들이 신선도를 알 수 있도록 한다.

모든 유통과정을 냉장화한 선진국보다 미흡하지만 품질등급제가 정착되면 수송기간이 긴 중국 계란을 막는 '비관세 장벽'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농림부 노경상 축산국장은 "일부 영세 양계농가들이 당장 품질등급제가 불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값싼 수입산과 차별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