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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한반도 안보 이상없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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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재의 한반도 안보상황은 1994년의 '북한 핵 위기'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발전될 수가 있는 불안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다만 햇볕정책에 따른 '평화무드'가 '안보불감증'의 관성적 효력을 낳아서 현실을 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한가하게 햇볕정책의 '대안부재론'을 되뇌고 있으니 마치 "한반도 안보전선 이상 없다"라고 하는 것 같다.

*** 94년 이후 北美관계 최악

한반도 안보문제의 핵심은 미국의 반테러 국제질서 구축 전략에 관련된 대북한 정책과 이에 대한 김정일의 대응자세, 그리고 우리 정부의 역할과 기능이라는 3자관계가 '기회'보다는 '위기'를 낳기 쉽다는 데 있다.

몇주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부시 대통령이 제시한 '대북협상 3개 기본영역'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처리 및 재래식 군비태세 완화의 문제를 통상적인 난제라는 수준에서 보려 했다.'재래식 군비태세 완화'요구를 클린턴의 정책에 추가된 조건 정도로 생각했고, 이에 대해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재론하는 등 강경하게 반발해 골치라는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반테러 전쟁 결과가 미.북간 관계개선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무척 복잡해져 간다. 며칠 전까지 미국은 제네바에서 생물무기협약(BWC)을 통해 북한 등을 겨냥한 생물무기 개발중단 압력의 공식화를 추진해서 관심을 끌었다.

한편 과거 제네바 기본합의에서 미제로 남겨두었던 북한의 '과거 핵개발'실태 확인을 위한 사찰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제 머지않아 화학무기금지협약(CWC)을 통한 북한의 화학무기 포기 압력을 구사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 모두가 반테러 국제연대 및 신질서 구축을 미국 외교의 최우선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재래식 군비 완화'요구가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판에 자기안보의 보루로 삼고 있는 '비대칭적 무기'체계까지 포기하라는 압력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미국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우려와 특히 생화학무기 통제정책이 국제테러 박멸을 향한 미국의 '힘과 의지'의 실천영역이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그리고 최근의 증진된 미.중.러 3자간의 관계가 힘을 더 실어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클린턴 정부 말기의 북.미 합의 수준인 미사일 포기와 불량국가 등급 해제 및 경제지원을 맞교환한다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도다.

그러나 이미 시간을 놓친 듯하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이후'에 더욱 세게 대량살상무기 능력의 포기를 강요할 터인데,북한은 선군정치, 제왕적 일인체제, 외세에 대한 피해망상이 결합된 구조적 한계 때문에 의미 있는 협상을 하게 돼있지 않다. 그래서 벼랑끝 전술 혹은 죽기로 버티기라는 진정 위험스러운 선택만이 남아 있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우리의 상황 인식은 어떠한가.정부의 '북한 건드리지 말기'독트린 때문에 북한의 인권과 기아 상황에 무감각해져 있고, 북한 붕괴를 걱정함은 '불순한'사고요, 이미 '합리적 대화 상대'로 공인받은 김정일과 벼랑끝 전술은 거리가 먼 것처럼 돼있다. 내일의 한반도 안보를 이러한 태평스러운 상황 인식에 맡겨둘 수는 없다. 그래서 이제 제대로 된 포용적 개입정책의 대안이 긴요한 것이다.

*** 3國 군사문제 협상 필요

우리의 향후 대안 마련에 포함돼야 할 고려사항이 있다. 대북 유화책과 '선공후득(先供後得)'사고를 접어야 한다. 오히려 북측 강경세력의 모험주의를 부추길 뿐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는 강력한 한.미 동맹과 반테러 원칙을 고수하면서 안보태세를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 북한에는 '민족기획'전술 대신 '반테러 신질서'구축의 현실에 순응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음을 인정하자.

구체적 접근방법과 관련해 앞으로 한.미.북 3자는 군사문제 협상(군비통제 및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에 초점을 맞춰야만 할 때가 되었다. 더 이상 포괄적인 군사안보 협상이 지연될 경우 한반도 위기와 재앙은 현실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정부는 모든 채널을 가동해 북한으로 하여금 당장 한.미.북 협상에 임하지 않을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임을 알려줘야 한다.

金東成(중앙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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