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도는 무기 첨단화] 上. 구태 못벗은 군조직·무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반도 주변국들을 비롯해 전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군 구조를 '노동집약군'에서 '정보기술집약군'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군의 첨단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론 우리 군도 이런 계획을 수립,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와 차세대전투기(F-X), 대공미사일(SAM-X), 공격용헬기(AH-X)등 첨단무기의 도입시기가 당초 계획보다 잇따라 연기되는 등 차질을 빚고 있다.

미래의 안보는 첨단무기의 확보 없이는 보장받을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군의 첨단화 계획은 어떤 상태에 있으며, 이의 바람직한 추진을 가로막는 요인들은 무엇인지를 점검해 보았다.

지난 9월 29일 동부전선에 위치한 육군과학화훈련장. 육군의 '전자전 시범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출동했던 M47 전차 한대가 고장으로 훈련에 참가하지 못하고 곧바로 퇴장한 적이 있다.

우리 군이 국방력 증강 계획에 따라 신형 무기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무기체계나 조직은 과거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수십조원에 달하는 첨단무기를 도입하고 이를 완벽하게 운영하기 위해선 여기에 걸맞은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나,아직까지 기존의 군 운영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9월 29일 동부전선에 위치한 육군과학화훈련장.

육군의 '전자전 시범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출동했던 M47 전차 한대가 고장으로 훈련에 참가하지 못하고 곧바로 퇴장한 적이 있다. 우리 군은 이같은 전차 등 경제수명이 다한 노후 무기.장비를 도태시키지 않고 신형 무기.장비와 중복 운영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10일 "1990년대 중반 이후 서부전선에 신형 K1 전차를 배치하면서 50~60년대 생산된 M47과 M48 전차를 동부전선으로 이전했다"면서 "그러나 이곳은 산악지대여서 전차의 효용성이 떨어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미국.일본.대만 등 많은 선진국가들이 90년대 들어 병력을 줄이고 노후장비도 도태시켜 확보한 예산으로 국방력을 첨단화하는 것과는 대조적 현상이 우리 군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군 당국이 노후장비를 유지하려는 데에는 남한에 비해 재래식 무기와 병력이 많은 북한군에 대응하려면 가능한 한 많은 양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역대 군 지휘부의 전략적 판단이 들어 있다.

하지만 경제수명(25~30년)을 넘긴 무기들은 유지관리비는 물론 고장마저 잦아 정비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부작용이 있다.

특히 유사시 고장이 날 경우 미리 준비한 작전계획에 결정적 장애를 줄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 군사전문가는 "노후장비를 폐기하면 사병.장교는 물론 장군들 수까지 줄여야 하는 점을 군 수뇌부가 의식하고 있어 결단을 못내리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육군 소총소대는 신형 대전차 로켓인 '펜저파우스트'를 공급받고도 구형인 'M72 LAW' 수만기를 계속 보유하고 있다.

해군은 40년대에 건조된 구형 구축함을 지난해 말까지 운영해 왔다. 공군도 35년 이상 지나 조종사들이 타기를 꺼리는 F-5A/B 전투기를 교육용으로 사용 중이다.

또 90년대 후반 첨단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인 '미스트랄'을 일선 부대에 배치하고도 구형 '제블린' 1백여기를 폐기하지 않은 채 유지하고 있다.

권태영(權泰寧) 국방부 군사혁신기획단장은 "무기와 병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신형 무기가 늘어나는 만큼 구형무기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노후무기의 수리부품비는 급증하고 있는 반면 이를 충족할 예산은 충분치 못해 무기의 가동률이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떨어지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군의 한 관계자는 "전비태세 점검 때는 1백%에 가깝게 무기.장비 가동률이 나오나 실제 가동률은 60~70%에 불과한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강계두(姜啓斗) 기획예산처 국방예산과장은 "한정된 예산으로 군 첨단화를 추진하기 위해선 이같은 비효율적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석.이철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