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재-JP 대선 겨낭한 '치고 박기' 치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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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와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총재가 정면 대결을 벌이고 있다.'신승남(愼承男) 탄핵 정국'을 둘러싸고 벌어진 말싸움이 충돌의 실마리가 됐지만 대선의 전초전을 보는 듯하다.

JP는 대선 정국을 '반(反)이회창 포위 구도'로 몰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 같다. 주변에선 "승부수를 던질 기회를 보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공교로운 것은 김영삼(YS)전 대통령과 협공하는 모양이 됐다는 점이다. YS는 탄핵안 불발로 이회창 총재가 정치적 상처를 입은 다음날인 9일, "한번 신의를 저버린 사람은 국민을 또다시 배신할 것이기에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돼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JP는 10일 "그 말 딱 맞는 얘기네"라고 동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평소 李총재 개인을 겨냥한 공격 논평을 자제하던 자민련 정진석(鄭鎭碩)대변인도 '이회창 대통령 불가론'을 제기했다. 그는 李총재가 ▶중앙선관위원장.감사원장.국무총리.대통령 후보까지 시켜준 金전대통령을 배신하고 화형식을 했다▶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자신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까지 도와준 김윤환 민국당 대표.이기택씨 등의 정치생명을 끊어버렸다고 비난했다.

鄭대변인은 "3金 청산을 외치는 李총재보다 3金 포용을 주장하는 이인제 민주당 고문이 차라리 어른스러워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치권은 이같은 2야 분열 현상이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 이후 벌어지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일종의 느슨하고 보이지 않는 3金 연합이 가동된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JP 스스로도 이날 당직자들에게 "이런 사람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李총재를 비난했다.

내년 대선 때의 연대 가능성을 남겨 놓기 위해 JP를 자극하지 않으려 애써온 이회창 총재의 자세도 달라졌다.

그는 이날 아침 기독교방송 인터뷰에서 "소아병적 태도"라고 JP를 비판했다.

결국 李총재측은 대선가도에서 JP를 힘으로 굴복시킬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이회창 총재의 자민련.충청권 대책을 세우고 있는 김용환(金龍煥)국가혁신위원장은 "JP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우리는 자민련을 부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李총재측은 대선뿐 아니라 그 전초전격인 지방선거를 JP와 자민련이 없는 상태의 양당 구도로 치러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분석된다.

자민련은 10일 李총재의 방송 발언에 항의하기 위해 한나라당 당사를 항의 방문했다. 부총재 이하 당직자들이 전원 참석했다. 이들은 7층 총재실 앞의 비서실장실에서 李총재 면담을 요구하며 고함을 질렀고, 한나라당 김무성(金武星)비서실장은 "사전 약속이 없었다"며 제지했다.

김학원(金學元)총무와 정진석 대변인은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김종필 총재를 공격하는 말투가 너무 저열해 참을 수 없어 왔다"고 흥분했고, 한나라당 김기배(金杞培)총장과 김무성 비서실장은 "자민련도 우리 당 총재를 공격하지 않았나. 임금님도 없을 때는 욕하는 것 아닌가. 큰 정치를 하자"고 되받았다. 논쟁은 30여분간 계속됐고, 주변에는 몸싸움을 우려한 경호원 10여명이 배치되기도 했다.

이번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충돌은 JP의 정치적 생존과 초보 수준의 반이회창 연대 성사 여부가 걸린 싸움으로 비화하고 있다.

전영기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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