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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11 테러 3개월 달라진 국제질서…달라진 미국시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달라졌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11일 뉴욕과 워싱턴에 대한 동시다발 테러 사건 직후 한 말이다. 부시의 말대로 9.11 테러사건은 비단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바꿔놓았다.

특히 국제정치에 미친, 앞으로 미칠 영향은 엄청나다. 역사학자들은 역사 기술에서 '9.11전(前)'과 '9.11후(後)'로 시대구분을 해야 할지 모른다. 9.11테러 3개월을 맞아 국제질서에 불고 있는 재편 바람과 미국의 변화를 집중조명한다.

그동안 부시 행정부의 외교노선은 고립적 일방주의(unilateralism)였다.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국익에 필요하면 추진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는 것이다.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방어(MD)계획 추진, 교토(京都)기후협약 탈퇴, 국제형사재판소 설립과 생물무기 검증 거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불참 등이 구체적 예다.

그러나 9.11 테러사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반(反)테러 국제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외교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다자주의(multilateralism)로 전환한 것은 아니다. 기존의 일방주의 외교노선을 수정한 것이 거의 없다.

일방주의를 기본으로 하되 여기에 다자주의를 더한 '다자주의적 일방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별도로 새 외교노선으로 등장한 것이 이른바 부시 독트린이다. 반테러전쟁에서 미국의 친구가 되든지 아니면 적이 돼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 강경 외교노선이다.

일부에선 이를 가리켜 또 다른 냉전 또는 미국 중심의 신(新)제국주의라고 비판한다. 부시 독트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군사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나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다.

러시아는 반테러전쟁을 지지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체첸문제에 대한 사실상 용인(容認)을 얻어내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기로 하는 등 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미국이 반테러전쟁을 기회삼아 옛소련 영토였던 중앙아시아에 진출하는 것을 경계한다. 이는 카스피해 석유와 이를 수송하기 위한 새로운 송유관 부설이 아프간 전쟁의 한 요인이라는 해석과 맞물려 있다.

중국도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이슬람 세력에 대한 강압 통치에 미국이 개입할 여지를 줄였다는 점이 소득이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의 접근에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그동안 공들여온 러시아와의 반MD 연대가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또 반테러전쟁으로 강화된 미국의 국제문제 개입 의지가 대만 문제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 미.일,미.인도 관계 강화와 미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이 거대한 중국 포위망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안보관계를 강화해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가 이끄는 일본은 반테러전쟁을 기회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해외에 전투부대를 파병하는 길을 열었다.

이로써 전후(戰後) 일본의 안보 기본원칙이었던 평화헌법은 유명무실해졌으며, 사실상 일본군이 재등장했다. 미국은 MD계획 등에서 일본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앞으로 미.일 관계는 더욱 긴밀해질 전망이다. 이에 대해 한국.중국을 비롯한 과거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을 당했던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경계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럽은 영국과 대륙국가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의 맹방인 영국은 이번 경우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주목과 비판을 함께 받았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독일의 활약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최대 규모인 항공기와 중화기, 그리고 4천명 병력을 아프가니스탄에 파견하기로 한 독일은 발언권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새 정부 구성을 위한 정파(政派)회의를 유치하고, 전후 아프가니스탄 복구 사업에도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이에 비해 프랑스는 소극적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슬람권(圈)은 9.11 테러사건의 최대 피해자다. 이라크.이란.시리아.수단.리비아 등 소위 '불량국가'의 대부분이 이슬람권에 속할 뿐 아니라 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 등 친미(親美)국가들마저 테러범들이 자국 출신이라 난처한 입장이다.

양국은 미국으로부터 반테러전쟁에 대한 명백한 지지 표명을 요구받는 한편으로 국내의 테러 동조세력으로부터 친미 노선 포기를 요구받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역사학자 이리에 아키라(入江昭)는 21세기의 첫 해인 2001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인류는 공포와 희망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상황 속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시다발 테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무자비한 공습이 공포인 반면 전쟁 중에도 계속된 유엔의 식량 원조와 난민 구제활동, 그리고 전후 아프가니스탄 복구를 위한 노력은 희망이다.

인류 역사는 항상 공포와 희망의 양면성을 갖고 진행돼 왔다. 테러와의 끝없는 전쟁이라는 공포의 노력보다 국제사회의 협력과 연대로 더 이상 불행을 막는 희망의 노력이 더 소중하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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