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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커비전] 응원의 힘 16강 이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 일이다.

전 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와 아프리카의 촌놈(□) 카메룬이 개막전에서 맞붙었다.대부분 아르헨티나가 대승하리라 예상했다.

밀라노의 기우세페 메차 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에 축구신동 마라도나를 보기 위해 8만여 관중이 운집했다. 이탈리아인들은 자국과 우승을 다툴 아르헨티나를 의식, 일방적으로 카메룬을 응원했다. 메차 스타디움은 지붕이 관중석을 모두 덮고 있어 관중들의 함성은 엄청난 공명 효과를 냈다.

개막전을 생중계하던 필자와 아나운서가 헤드폰을 쓰고 소리소리 질러도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아르헨티나가 공을 잡으면 일제히 "우-"하는 야유를 보냈고 카메룬이 공을 다루면 박수를 치며 "와-"하는 환호를 보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고 카메룬 선수들도 신이 났다. 카메룬은 2명이 퇴장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후반 22분 오맘 비크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한마디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조 추첨 결과 한국은 동유럽의 강호 폴란드,북중미의 단골손님 미국, 우승후보 가운데 한 팀인 포르투갈과 한 조가 됐다.

엥겔 폴란드 감독은 인터뷰에서 "한국이 정말 두렵다"고 말했다.엥겔 감독은 "첫 경기는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부담스러운데 한국은 홈팀이다. 조 추첨식에서 본 한국의 축구 열기와 열정을 봤을 때 우리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한국이 두려운 이유를 말했다.

홈 경기의 이점은 여러가지가 있다. 시차없이 안방에서 경기를 치른다는 점과 그라운드 컨디션을 잘알고 음식.수면 등이 모두 홈 이점이다.

다만 한국이 폴란드(부산).미국(대구).포르투갈(인천)과 맞붙는 경기장이 공교롭게도 모두 축구전용 아닌 종합경기장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종합경기장은 육상 트랙 때문에 그라운드와 관중석이 전용 구장보다 멀리 떨어져 있다. 이는 홈 그라운드의 가장 큰 이점 중 하나인 열렬한 팬들의 성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

관중의 열화 같은 응원은 분명 한국 축구가 목표로 삼고 있는 16강 진출을 달성하기 위해 빠져서는 안될 '소금'이다.종합경기장은 우리 팬들의 성원의 효과를 반감시킬 것이다.

9일 오후 5시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한국과 미국의 평가전에서는 선수뿐 아니라 경기장을 찾은 팬들도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이용하는 실전 연습을 함께 해야 한다. 한라산이 흔들릴 정도로, 미국 선수들의 귀청이 떠나갈 정도로 혼을 빼보자.

또 내년 월드컵 때 한국의 예선 세경기를 보기 위해 표를 예매한 팬들은 TV 앞에서라도 목청을 가다듬어 열심히 응원하는 연습을 해보자.

한국은 분명 포르투갈.폴란드.미국에 비해 객관적 전력이 뒤진다. 하지만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이용해 상대의 기를 꺾는다면 이탈리아월드컵 때 카메룬이 기적을 일궈냈듯 한국 축구가 돌풍을 일으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신문선 <중앙일보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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