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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중국 경제 대장정] 24. 첨단에서 최첨단으로-선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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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선전의 외국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새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는 출장가는 게 일이다.

출장지는 주로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 졸업을 앞둔 고급인력을 상대로 '로비'를 하기 위해서다. 로비의 목적은 입사, 조건은'최상의 대우'다. 그래도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인사담당자들은 애간장을 태우기 일쑤다.

선전의 삼성SDI 방태현 인사부장은 "아무리 좋은 조건을 내걸어도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 선전까지 오려는 학생들은 별로 없다"며 "인재난이 바로 첨단도시 선전을 최첨단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13억 인구의 대륙에서 선전이 겪는 인력난은 예상 밖으로 심각했다. 올해 선전시 공산당 전체회의에선 대학교 유치를 중점 안건으로 다뤘다. '시의 첨단산업 경쟁력을 높이려면 대학을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선전시위원회서기인 장가오리(張高麗)는 지난 7월 "시내 요지에 국내외 유수대학들을 위한 대학구를 조성할 계획"이라며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았다.

서울 여의도 면적보다 넓은 10㎢의 부지가 대학구로 지정됐다. 국내외 대학을 상대로 유치협상도 본격화했다.

선전시 대외무역경제합작국 예민후이(葉民輝)국장은 "베이징대.칭화대.하얼빈공업대학 등 3개 대학이 분교설립을 약속했고, 미국의 스탠퍼드대학이나 영국 대학들과도 분교설립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개방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선전시가 이처럼 대학유치에 부산을 떠는 이유는 뭘까. 우선 상하이 등 중국 내 경쟁도시들을 따돌리기 위해서다.

뒤늦게 첨단산업에 뛰어든 상하이는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등 이미 최첨단을 위한 준비를 일사천리로 진행 중이다.

세계 첨단산업 기업들이 몰려들고 푸단(復旦)대.상하이교통대.상하이대와 저장(浙江)대 등 막강한 이공계 대학이 받춰준 결과다. 진짜 첨단산업을 일구려면 재원.기업.인재의 삼박자를 모두 갖춰야 하는데 선전시는 상하이에 비해 특히 고급두뇌의 부족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선전은 시 공업생산 중 첨단산업이 4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최고의 첨단산업 도시다. 첨단산업 생산액이 20% 안팎인 상하이.베이징보다도 첨단 비중이 크다.

그러나 외양상 숫자와 달리 알맹이가 없다는 게 선전의 고민이다. 독자기술 개발능력이 달리다 보니 첨단도시 선전의 명성은 홍콩 제품을 단순히 대리생산해 주고 얻은 빛좋은 개살구란 자성론까지 일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선전이 자랑하는 첨단 공장들은 업종이나 기술력 등에서 아직 세계적인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선전에서 가장 중심가인 푸톈취(福田區)엔 브라운관을 만드는 삼성SDI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첨단기술만 빼놓고 웬만한 기업들은 모두 시 경계 밖으로 내보낸 선전시에서 일반 브라운관이 첨단기술로 대접받고 있는 것이다. 브라운관뿐 아니다. 브라운관용 유리벌브나 전화기.컬러 TV 등 한국에선 이미 첨단 간판을 내린 품목들도 여전히 시내 중심가에서 첨단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래서는 몇년 못가 중국 내 경쟁도시에도 뒤처질 게 뻔하다는 사실을 선전시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게 최첨단 도시로의 발전전략이다. 베이징의 중관춘이나 상하이의 창장하이테크파크처럼 첨단기술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 앞으로도 명실상부한 첨단도시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첨단을 넘어선 최첨단, 그게 선전의 최종 지향점이다. 첨단과 최첨단은 글자 하나 차이지만 그 사이엔 엄청난 벽이 가로막혀 있다. 물론 선전시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첨단을 향한 선전시의 노력이 대학유치에 그치지 않고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선전시는 외자유치도 첨단산업만 하기로 했다. 葉국장은 "저부가가치 산업은 사양한다. 최첨단만 오라"며 "최첨단엔 그에 어울리는 대우를 해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시는 반도체.소프트웨어 등 선전에 없거나 취약한 산업을 '투자유치 장려품목'으로 선정하고 특혜를 마련했다.

예컨대 반도체공장을 차리겠다면 5년간은 세금을 면제해주고 다음 5년은 절반만 받겠다는 것이다. 물론 공장부지 임대는 무료다.

첨단인프라 재정비에도 재원을 쏟아부을 계획이다. 올해부터 2005년까지 6백30억위안(약 10조원)을 들여 선전첨단산업지역(産業帶)을 조성키로 했다. 서울의 4분의1쯤 되는 1백52㎢의 부지에 모두 11개의 첨단기지를 새로 짓는 대역사다.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도 대폭 풀겠다며 '규제혁파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 관계자는 "첨단산업 투자에 13개 부문을 심사하고 15개 항목을 보고하고, 30개 항목의 비용을 거두고 50개의 도장이 필요하다"며 "1997년 한차례 규제개혁을 했지만 여전히 규제가 많아 보다 강도 높은 개혁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으로 개방 후 20여년 동안 따라다닌 '홍콩의 생산공장'이란 멍에를 벗는 게 선전시의 희망사항이다. 그러나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중국 대륙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아직 경제 실험은 진행 중이므로.

이정재(경제연구소).남윤호(도쿄 특파원).양선희(산업부).정경민(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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