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靑馬)는 가고
지훈(芝薰)도 가고
그리고 수영(洙暎)의 영결식(永訣式).
그날 아침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그들이 없는
서울의 거리.
청마도 지훈도 수영도
꿈에서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깨끗한 잠적(潛跡).
다만
종로 2가에서
버스를 내리는 두진(斗鎭)을 만나
백주 노상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중략)
그리고 어제 오늘은
찻값이 사십원.
15프로가 뛰었다.
-박목월(1916~78) '일상사(日常事)' 중
청마.지훈.수영.두진, 그리고 목월, 그들 모두의 깨끗한 잠적. 그런데 세상은 깨끗한 게 아니라 멀쩡하다. 오래 삭은 한국 현대시사의 책장을 덮고 나니 서울 거리에서는 찻값이 4천원,1백배가 뛰었다. 그러나 가슴이 막막해지는 것은 찻값 때문이 아니다. 시인의 죽음이 찻값 같은 '일상사'가 되어서가 아니다. 그럼 차 한 잔 값에서 도무지 뛸 줄 모르는 원고료 때문일까?
김화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