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박목월 '일상사(日常事)'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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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청마(靑馬)는 가고

지훈(芝薰)도 가고

그리고 수영(洙暎)의 영결식(永訣式).

그날 아침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그들이 없는

서울의 거리.

청마도 지훈도 수영도

꿈에서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깨끗한 잠적(潛跡).

다만

종로 2가에서

버스를 내리는 두진(斗鎭)을 만나

백주 노상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중략)

그리고 어제 오늘은

찻값이 사십원.

15프로가 뛰었다.

-박목월(1916~78) '일상사(日常事)' 중

청마.지훈.수영.두진, 그리고 목월, 그들 모두의 깨끗한 잠적. 그런데 세상은 깨끗한 게 아니라 멀쩡하다. 오래 삭은 한국 현대시사의 책장을 덮고 나니 서울 거리에서는 찻값이 4천원,1백배가 뛰었다. 그러나 가슴이 막막해지는 것은 찻값 때문이 아니다. 시인의 죽음이 찻값 같은 '일상사'가 되어서가 아니다. 그럼 차 한 잔 값에서 도무지 뛸 줄 모르는 원고료 때문일까?

김화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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