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특별 기고

“한국인은 최고의 리더십 유전자 타고난 민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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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반갑습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던 데는 한국인이란 정체성이 가장 큰 역할을 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전 한국인의 핏줄로부터 얼마나 많은 강점을 선물 받았는지 알게 됐고, 이를 자랑스러워하게 됐습니다. 따지고 보면 리더십의 요소란 서로 모순되고 배타적인 성격인 게 많습니다. 터프하면서도 예민해야 하고, 결정은 단호하면서도 좋은 경청자(a good listener)가 돼야 하지요. 스스로 자존심을 지니면서도 자신의 단점에는 또 겸손해야 하니…. 참 이런 자질을 다 가진 사람이 어디 흔하겠습니까.

그런데 독특하게도 이런 여러 가지 모순이 되는 리더십의 기질을 타고난 민족이 한국인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때론 겸손하고, 단호하면서도 남을 받아들일 줄 압니다. 때론 불같은 성격에 감성적인 반면 헌신적이고 충직하기도 합니다. 저도 이런 다양한 상호 모순의 특징이 섞인 피가 제 몸에 흐른다는 걸 자라면서 깨달았습니다. 지구상 어느 민족 중에서 이렇게 강하고, 서로 상반되는 리더십의 자질을 다 갖춘 사람들이 있을까요. 이건 바로 유전적으로 한국인이 가장 뛰어난 세상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겁니다. 관건은 여러분의 이런 소중한 자산을 얼마나 조화롭게 개발시켜가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미국에 와서 공부하는 많은 한국 청년들을 보면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인의 유전적 강점을 잘 깨닫지 못한 채 너무 학업 성적의 덫에만 매몰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국의 부모님들도 학업의 성취엔 엄청난 관심을 보이지만, 자녀의 사회적·감성적 발전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한국인 학생들이 ‘너무 단조로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미국의 명문 대학 입학이 거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문 대학을 졸업한 한국 학생들조차 전인적인 자기계발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직장에선 관리자로 승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너무 학업 성적에만 매달리다 보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창의력과 사회적, 감성적 소통의 기술이 부족할 거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저도 어렸을 땐 아버지께서 늘 학업을 강조하셨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청소년 시절에 저의 다른 특성들은 개발이 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늘 소심했고, 남 앞에 나서기도 꺼려했지요. 고교에 들어가서부턴 제 자신의 성장을 위해 스포츠·봉사 활동이며 클럽의 리더로 적극적인 활동을 했고, 하버드·스탠퍼드·UC버클리대의 합격증을 받아 들게 됐습니다. 세 대학을 다 찾아가 선배들과 졸업생들로부터 얘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전 스탠퍼드를 택했습니다.

하버드의 평판과 실력은 최고였지만 서부의 학교에는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과 고정관념에 과감히 도전하는 상대적 강점이 있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창의력의 엔진인 실리콘밸리도 거기 있었습니다. 스탠퍼드 졸업생이 구글 같은 새로운 기업을 가장 많이 만드는 게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글로벌 리더가 되고픈 한국의 젊은이 여러분. 다양하고 전인적인 경험과 자기계발이야말로 정말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될 수 있는 훌륭한 유전자를 이미 물려받았습니다.

한국인 개인뿐 아니라 좀 더 지평을 넓히면 한국인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전 세계의 한국인들에겐 모두 엄청난 잠재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물론 유전적으로 타고난 한국인 특유의 내적 다양성 때문에 상호 갈등과 반목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의 이런 특성과 차이를 서로 이해하고 수용한다면 거꾸로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한국인 사회가 하나로 응집하고, 일사불란하게 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겠지요.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한다면 한국인은 세상의 모든 측면에서 글로벌 리더가 될 역량을 갖춘 민족이라고 확신합니다.

권율 미국 FCC(연방통신위원회)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