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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1월] 초대시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햇볕은 숲 속에 낮게 내려앉고

가을 물소리 온 고을 씻어 내려

철늦은 사랑법 쏟으며

짙은 그리움이 끓는다.

갈대 우는 소릴 지나 바람따라 발길 돌리면

떠 있는 가랑잎 하늘을 빙빙 돌아

모롱이 바람 비우고 오는

그대 쓸쓸한 발자국소리.

안개 피는 백담사 와가(百潭寺 瓦家) 하나 둘 비가 덮이고

극락보전 부처님 모습 차례차례 잠든 밤엔

범종각 빈 난간에 앉아

세상 물소릴 홀로 듣네.

미웁다 하지만 돌아 와 보면 그리워지고

세월을 이기는 장사(壯士) 어딘들 있겠는가

오솔길 오르내리는 인파(人波)

만해(卍海)심법(心法)을 찾고 있었네.

◇ 시작노트

사람 사는 길은 다 똑같다고 봅니다. 다만 어떻게 사느냐하는 방법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봄같이, 봄 풀같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여름처럼 항시 뜨겁게 살아가기, 무덥게 들끓으면서 살아가는 보법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서 그것과는 대조적인 사람들도 적지 않게 만나게 됩니다.

얼마 전 고향에 장조카가 죽은 사건을 보면서 또 다른 삶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산다는 게 그렇게 오래지 않다는 것, 인생의 정도(正道)만을 걸어가며 살아도 못 다하며 살 것인데, 축도나 사도를 빌어 가볍게 살 것인가 하는 자문(自問)을 해볼 때 가 있는 것입니다. 문인은 누구에게나 비굴하지 않아야 하며,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데, 요즘 세상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들어보면 정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만해의 심법을 생각하며 보내고 싶습니다.

◇ 약력

▶1975년 『현대시학』 시조3회 추천완료

▶시집 『가을우화』외 3권, 시조평론집 『문학과 양심의 소리』외 1권

▶제1회 중앙시조대상(신인부문)외 수상

▶현재 경북문인협회 회장, 경북 영양 수비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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