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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소문에 "우리도…" 협박전화 공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10여년 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벌여 온 임모(54 ·여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씨는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반갑지 않은 전화가 갈수록 잦아져 홍역을 앓고 있다.

장애인단체 등 불우이웃임을 내세운 사람들이 전화로 물건 구입이나 성금 기탁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원도 알 수 없는 사람이 전화를 해 ‘왜 특정 단체만을 돕느냐’·‘우리도 좀 도와 달라’는 등 반강제적으로 물건 구입을 강요,이들 따돌리느라 애를 먹는다”며 “좋은 일 하기도 힘든 세상”이라고 한탄했다.

불우 이웃을 돕기 위해 성금을 기탁하거나 자원봉사활동을 해온 사람 일부가 자신들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손을 내미는 협박성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

협박 유형은 주로 장애인 ·사회복지단체를 빙자해 고가의 물건을 구입하도록 강요하는 것. “좋은 일 많이 하는데 저희도 좀 도와 주세요”라는 읍소(泣訴)형도 있으나 “우리는 왜 안 도와주느냐”식의 협박형까지 다양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상대방의 승낙도 없이 일방적으로 수십만원짜리 물건을 보내는 등 횡포를 부리기도 하고 있다.

사비를 들여 노숙자·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이모(70 ·익산시 남중동)할머니는 최근 장애인단체 관계자라고 밝힌 50대 남자로부터 60만원 상당의 찻잔세트를 사 달라는 강요성 전화를 받았다.

형편이 넉넉치 않아 극구 거절했지만 며칠 뒤 물건이 집으로 배달됐다.

그는 “인정상 돌려 보내지 못한채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보관하고 있다”며 “세상이 이러니 누가 좋은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이달 초 양노원 ·보육원 등에 5백만원어치의 쌀을 보낸 익산 J건설 이모(53)사장도 “언론을 통해 좀 알려지자 도와달라는 사람들의 전화가 줄을 이었다”고 호소했다.

이씨의 비서실 관계자는 “이들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시청 등 행정기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단체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처럼 사이비 불우 이웃이 설친다면 진짜 불우한 사람들만 피해를 입게 된다”고 우려했다.

소비자고발센터 관계자는 “장애인단체 등을 빙자한 이들은 대부분 물건판매 회사들의 영업사원”이라며 “소비자단체에 신고를 하면 반품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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