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테러용의자 군법정 단죄' 비난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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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테러용의자들을 군사법정에 세우기로 한 미국 정부의 방침에 대해 국내외에서 비난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테러 세력을 신속하게 단죄한다는 명분으로 도입했지만 사형선고 남발, 피고인의 방어권 제한 등으로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군사법정 설치를 강행한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인권단체.의회 및 유럽국가 등과의 마찰이 예상된다.

◇ 테러용의자 인도 거부=스페인은 이달 초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에 연루된 혐의로 8명의 용의자를 체포했으나 최근 이들을 미국측에 인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스페인 정부 관계자는 "용의자들이 군사법정에서 비정상적인 재판을 받거나 국내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유럽연합(EU)국가들도 모두 사형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국내 비난여론 등을 의식해 미국에 테러 용의자를 선뜻 내주지는 않을 전망이다.

테러 용의자들이 사형을 당할 경우 용의자를 보내준 나라가 보복테러를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미국의 방침에 반발하는 이유로 보인다.

◇ 미 의회도 반발=미 상.하원 일부 의원들은 군사법정 재판이 기본적 인권을 침탈할 가능성이 크다며 대정부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 상원 법사위원회는 28일 청문회를 열어 군사법정 설치의 법적 타당성을 따질 예정이다. 상원은 또 다음주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을 직접 불러 군사법정 설치가 미국의 헌법체계에 어긋나지 않는지도 물을 계획이다.

미 의회의 반발엔 테러 이후 부쩍 재량권이 커진 행정부를 견제하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국방부 등이 최근 ▶아랍인에 대한 무차별 신문▶용의자.변호사간 대화 감청 허용 등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던 군사법정까지 부활시키려 하는 마당에 이를 방치하면 '비상상황'이라는 명분 아래 행정권을 남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군사법정이란=미 국방부가 관할하며 비밀재판이 가능하다. 민간법정과는 달리 시민 배심원은 없다. 변호사 선임권, 피고인측이 방어용으로 제출한 증거 등을 인정하지 않아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3일 군사법정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훈령에 서명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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