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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김정일의 투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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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예전 조선에서 살아갈 방도가 없는 빈민이 돈푼깨나 있는 양반에게 자신의 삶을 의지하는 것을 투탁이라 했다. 순조 15년(1815) 경상도 의성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남편이 죽어 걸식하던 세 모녀는 결국 양반가에 의탁해 노비가 되기로 했고, 계약서에 손바닥 도장을 찍었다. 투탁계약서엔 이렇게 쓰여 있다. “살 도리가 막막한 저 자신, 7세 윤점, 2세 제심 3인을 훗날 태어날 아이와 아울러 영영 드리오니 뒷날 혹 잡담하거든 관(官)에 고해 바로잡으세요.” 김 위원장이 내미는 손을 후진타오 주석이 마주 잡았을 때 이심전심 오고 간 교감이 그것이었다.

당장 호구지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10년 후를 내다본 투탁이었다. 향년 68세, 뇌졸중이란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김 위원장은 80세까지는 어찌 버틴다 해도 그 이후 북한의 생존을 보장할 도리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아마 평양에서 10년 후 일어날 최악의 시나리오에 몸을 떨었을지 모른다. 예컨대 이런 것 말이다. ‘당 행정부장인 장성택이 권좌에 오른 30대 청년 김정은을 제쳐두고 수렴청정을 행하고, 군부와 외교통일파 간에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진다. 이미 노쇠해진 김정일 호위세력이 신군부의 무력시위를 막지 못하자 장성택은 신군부와 결탁해 김정은을 축출한다. 식량부족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탈북자와 유랑민이 넘친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무력국가에 종말이 닥친다’.

소설로 치면 ‘북한 2020년’쯤으로 제목을 달아도 좋을 이 악몽의 시나리오를 두고 잠이 오겠는가. 그렇게 되면 세계역사상 가장 단명한 국가로 기록될 것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맏형 국가로 달려갈 수밖에. 원탁테이블에 놓였던 공식의제는 ‘경협’과 ‘내정, 외교의 전략적 소통’이었지만, 양국 수뇌부가 빠짐없이 둘러앉아 확인한 것은 피로 맺은 비밀결사였다. ‘시간의 흐름과 세대교체도 형제애를 희석시킬 수 없다’는 김 위원장의 절박한 호소는 ‘양국의 우호관계를 대대손손 계승할 역사적 책임’이라는 혈연적 개념으로 인준되었을 것이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김정일을 문전박대했다는 일부 보도도 있으나, 지원 당사자의 입장을 편케 하려면 국제사회의 눈을 조금 더 의식하라는 꾸지람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귀국길 짐 보따리엔 혁명동지들이 내준 식량과 생필품, 에너지 공급확인서가 실려 있었다.

김 위원장은 흡족했을 것이다. ‘내정, 외교의 전략적 소통’에 의해 악몽이 ‘안락한 태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굶주린 동생국가가 붕괴 위기에 직면할 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겠다는 베이징 당국의 적극적 지원 의사를 확인한 터에 뭐가 부족한 게 있으랴. ‘김정은 축출’은 시나리오에서 지워도 좋겠고, 권력투쟁도 중국이 조정자로 나서면 만사형통이다.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더라도 중국 인민해방군이 북한에 잠시 진주해 질서회복을 도운다면 금상첨화일 터다. 남한에 의한 통일? 언감생심! 김 위원장은 오랜만에 느긋해질 수 있었을 게다.

계통이 다른 한국으로서는 혁명세대의 핏줄을 잇는 1942년생들-후진타오, 원자바오, 김정일-간에 주고받은 교감의 부호를 잘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해 두 명의 아이와 장차 나을 아이를 영영 드리오니’라는 계약서의 문구가 끝내 마음에 걸린다. ‘나와 가족을 포함해 북한을 영영 드리오니’로 자꾸 환치되기 때문인데,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점잖게 한국을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대국이다. 주변국가의 일에 아무렇게나 편을 들지는 않는다’.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만을 갖고선 통일은 여전히 멀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