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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노트] 이런 '패자부활전' 아시나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외환위기로 한국사회가 휘청거렸던 3년여 전 '아나바다 운동'이 전개됐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고'를 내세운 생활 캠페인이었다.

2001년도 끝나가는 요즘,'아나바다'처럼 '괴상한'이름의 영화 잔치가 마련된다. 다음달 1일부터 2주간 반포 센트럴식스와 분당 시네플라자에서 열리는 '와라나고'다.

'와라나고'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임순례 감독), '라이방'(장현수), '나비'(문승욱), '고양이를 부탁해'(정재은)등 네 편의 영화에서 첫글자를 딴 말. 지난달 13일 '고양이를 부탁해'를 시작으로 1~2주 시차를 두고 개봉됐으나 관객의 호응을 받지 못했던 이들 영화들이 '죽어도 이대론 물러날 수 없다'는 각오로 배수진을 친 것이다.

관계자들의 열의가 놀랍다. 전문가들로부턴 호평을 받았으나 관객에겐 외면당한 비운에 굴하지 않고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패자부활전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

일례로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재활용에서 성공한 경우. 일반상영을 마친 지난 10일부터 2주간 극장 한곳을 빌려 주말 65%, 주중 45%의 객석 점유율을 올렸고, 또 '와라나고'와 별도로 다음달 한달간 또 다른 극장을 임대해 영화를 상영할 계획이다.

궁즉통(窮卽通),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열악한 상황에서도 다양하고 색깔 있는 작품을 관객들에게 알리려는 이들의 패기가 주목된다.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올 부산영화제에서 "지난해 최고 흥행작 'JSA'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작은 영화를 관리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 그 지혜가 모아지고, 그래서 제2, 제3의 '와라나고' 같은 옹색한 잔칫상이 차려지지 않는 한국 영화계를 소망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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