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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쓰기에 능한가요?

중앙일보

입력

김송은 대치 에듀플렉스 원장

사회 과목이 유독 어렵다는 학생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딱히 사회 과목에 소질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냥 교과서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과학은 죽어도 못하겠다고 머리를 내두르는 학생도 있다. 정작 점검을 해보면 과학적 개념에서 막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교과서를 읽어내지 못하는 것 뿐이다. 천진한 표정으로 ‘공산주의’가 ‘공장에서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냐’고 묻는 학생에게 사회탐구 공부법이 무슨 소용일까.

만약 수학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의 학습 속도가 유난히 느리다면 학생의 언어능력을 전격적으로 재점검 해봐야 할 것이다. 책이라는 사물에 담긴 지식을 문자라는 매개체를 통해 받아들이는 과정을 공부라 정의한다면, 유능한 학습자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은 그 문자 사용에 대한 능숙함일 것이다. 더 과격한 단순화를 허락한다면 우리말 구사 능력이 학습능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도 할 수 있다.

반에서 중간 이하의 성적을 받고 있는 학생의 학습관리를 한 적이 있다. 이전엔 학교 수업외에 따로 공부를 해본 적이 전혀 없는 학생이었다. 학원도 다니지 않아 시간이 많았던 그 학생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였다. 하루 종일 그저 습관처럼 수많은 책들을 읽었을 뿐이라고 했다. 학생은 매니저와의 상담을 통해 조금씩 공부를 시작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 두 달 만에 수학을 제외한 전 과목의 성적이 90점 이상으로 뛰어 오른 것이다. 그 학생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없었다.

최하위권이 느끼는 공부에 대한 거부감도 없었고, 기초 부족에서 오는 공부의 고통도 전혀 겪지 않았다. 그저 유능한 독자에서 유능한 학습자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었던 것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기 위해 글을 잘‘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면, 최종 입시를 대비하기 위해 이제 ‘글을 잘 쓰는 능력’도 필수적이다.

중·고교 각종 입시 전형에 반영되는 ‘자기소개서’는 한정된 분량 안에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담아내야 하는 글이다. 그 안에 삶에 대한 통찰력과 감동까지 녹아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풍부한 우리말 구사능력이 필요하다.

이제 언어에 대한 감수성과 표현력을 갖춘 글쓰기 능력은 자신의 진로마저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조건이 됐다.

글을 읽을 때 모르는 단어가 많은가? 다 읽었는데도 무슨 말인지 몰라 연거푸 다시 읽은 적은 없는가? 빨리 읽어 낼 수 있는가? 글을 통해 감동을 받곤 하는가? 명료하고 풍부하게 글을 쓸 수 있는가?

언어 능력은 기초 학습 역량이자, 궁극적으로 자신의 평생 경쟁력이다. 죽기 살기로 영어학원만 들락거리는 동안 가장 본원적인 성장의 동력이 소진돼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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