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이버 중독 증후군 심각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1 게임 아이템 도둑맞자 삶 의욕 상실 폐인 신세

서울의 한 구청 9급 공무원이던 J씨(30)는 지난 9월 사표를 낸 뒤 요즘은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한 채 온 종일 방안에 처박혀 지내는 '폐인'신세가 됐다.

3년 넘게 거의 매일 퇴근하자마자 동네 PC방에서 인터넷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를 하며 모아놓은 아이템(무기)을 모두 해커에게 도둑맞은 뒤 삶의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족들을 한꺼번에 잃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2 남자와 채팅 즐기다 '사이버 와이프'에 혼쭐

일본어 통역 가이드인 K씨(30.여.제주시) 역시 비슷한 온라인 머드게임을 벌이다 최근 혹독한 '사이버 스토킹'을 당했다.

올 초에 '울티마 온라인'이란 게임을 통해 알게 된 P씨(33)와 채팅을 해오던 중 자칭 P씨의 '사이버 와이프(가상 부인)'라는 여자의 전화를 수십차례 받은 것.

그녀는 "우리는 게임에서 만나 게임상에서 결혼한 사이버 부부"라며 "내 남편에게 계속 관심을 가지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인터넷 게임에 빠져 현실과 가상공간을 혼동하는 '사이버 중독 증후군'이 우려했던 것보다 심각하다.

게임에 빠져 마치 다른 세상 사람처럼 일반인의 상상과 상식을 훨씬 뛰어넘는 일탈행동을 일삼는 사례들이 급속히 늘고 있는 것이다.

게임에 필요한 사이버 머니나 고성능 무기 등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면서 이를 대상으로 한 절도(해킹)와 사기가 성행하고, 폭력배가 동원된 폭행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

또 실제로 인터넷 게임 무기를 둘러싸고 연간 3천억원 규모의 현금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번져가는 이러한 현상을 전문가들은 '사이버 아노미'로 진단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발생한 사이버 범죄 2만5천여건 중 인터넷 게임 관련 범죄는 26%인 6천5백19건.

지난 한 해 발생한 각종 사이버 범죄 전체 건수가 1천7백여건이었던 것에 비하면 인터넷 게임 범죄의 증가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

인터넷 게임 인구가 그만큼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대표적 머드게임인 리니지에 온 종일 매달리는 9만여명의 게이머를 포함, 항시 접속 네티즌이 20만~30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터넷 게임 탐닉현상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을 상대로 게임 아이템을 거래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네티즌들도 최소 1만명 정도가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게임에 빠져 대학을 중퇴한 L씨(25)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2월 경기도 광주에 컴퓨터 35대를 갖춘 사무실을 차렸다. 이들 컴퓨터로 동시에 L게임에 접속, 서른다섯명의 마법사 캐릭터를 가동해 게임세계의 '약(전투에너지)'을 확보한 뒤 다른 게이머들에게 현금으로 판다. 그는 "월 5백만원씩 벌었는데 요즘엔 나 같은 약장사가 부쩍 늘어 경쟁이 심하다"고 하소연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권성언(權成彦)수사팀장은 "사이버 범죄자의 75%가 10~20대"라며 "현실 세계와 인터넷게임 세계를 혼동하는 현상들이 단순히 범죄뿐 아니라 여러 형태로 나타나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게임의 연령등급제 도입▶인터넷 범죄 처벌을 위한 별도 법령 마련▶사이버 윤리교육 강화 등의 대책을 나름대로 제시하면서도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밀 실태조사부터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호준.손민호.남궁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