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정년' 과속하다 巨野 급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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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교원 정년을 63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처리가 늦어질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21일 국회 교육위에서 자민련과 함께 개정안을 기세좋게 통과시켰지만 본회의 처리는 주저하는 상황이다.'거야(巨野)의 힘'으로 밀어붙인데 대한 비판 여론이 예상 밖으로 강하기 때문이다.

반면 의기소침했던 민주당은 여론을 업고 기세등등해졌다. 이젠 여야의 입장이 바뀐 셈이다.

◇ 안팎으로 몰린 한나라당 지도부=이재오 원내총무는 25일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은 정기국회 회기 내(다음달 8일까지)에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당초 "오는 29일 본회의에서 1백% 처리한다"던 입장에서 상당히 후퇴한 것이다. 李총무는 또 "본회의에 앞서 열릴 28일의 법사위에서 여당이 물리력으로 법안 상정을 막을 경우 야당 단독으로 상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교사(서울 대성중.고) 출신으로 교원 정년 문제에 관한 한 대표적인 강경파인 李총무가 이처럼 물러선 것은 한나라당의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준다.

이와 관련, 러시아를 방문 중인 이회창(李會昌)총재는 "비판 여론이 급속히 확산 중"이라는 보고를 받고 "너무 성급히 처리하지 말라"고 서울의 당3역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당직자는 "당초 D데이로 잡은 29일은 李총재가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이어서 총재가 더욱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김원웅(金元雄)의원 등 비주류와 소장파 일부가 정년 연장을 반대하며 자유투표를 요구하는 것도 부담이다. 당내 분열은 李총재의 지도력 손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 여유를 갖고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해법을 찾는 쪽으로 李총재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게 당직자들의 설명이다.

◇ 백지화 압박하는 민주당과 불만스런 자민련=민주당은 정년 연장을 포기하라고 한나라당을 압박하고 있다.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이 26일 "교육위의 정년 연장 강행처리는 전적으로 李총재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며 "李총재가 백지화하라"고 요구했다. 여론의 부담을 李총재에 집중시키겠다는 의미다.

민주당의 한 핵심당직자는 "한나라당이 일단 한발 후퇴한 것을 볼 때 비판 여론이 더 커지면 주저앉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당으로선 김대중 대통령의 당 총재직 사퇴 이후 거야의 콧대를 꺾어놓을 수 있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한편 법안을 발의한 자민련의 조부영(趙富英)부총재는 "29일 법안을 표결하기로 결정해 놓고 다시 늦추면 국민의 갈등만 조장된다"며 한나라당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상일.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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