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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북한 보호는 한계 달해, 북은 완충국가 기대 버려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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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천안함 사태는 한반도 안보의 분기점이다. 역사는 3월 26일 이전과 이후로 나눠 기록할 것이다. 더 첨예화된 남북 긴장 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선택은 주목 받는다. 결정의 시점은 다가오고 있다. 5월 20일 천안함의 진실이 발표되면 한반도 해역의 파고는 급격히 높아지고 천안함 침몰의 원인 규명에 집중된 역량들이 대응 조치로 결집할 것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마침 국제문제 대기자 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히신문 주필이 서울로 왔다. 통일부 주최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반도 비전 포럼-새로운 파라다임을 찾아서’(13~14일)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본사 김영희 대기자와 긴급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후나바시는 “천안함 사태로 우리는 전인미답의 해역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히 신문 주필(오른쪽)이 14일 김영희 본사 대기자와 신라호텔 1층 인터뷰룸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신인섭 기자

▶김영희=천안함 사태가 동아시아를 격변 상태로 몰고 있다.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발견되면 한국과 미국은 짐작 가능한 여러 조치를 취할 것이다. 중국 후진타오 주석이 김정일 위원장의 해명을 토대로 사태에 접근하면 국제 제재 강화는 쉽지 않겠다. 두 가지가 문제다. 이 대통령이 국내의 성난 감정을 어떻게 추스르며 위기를 해결할 것인가. 이 문제가 현 수준 지역 안정을 해치지 않으며 해결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우선 중국은 이 사태와 여파를 어떻게 생각할까.

▶후나바시 요이치= 천안함 사태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도 어려운 상황에 빠뜨렸다. 중국은 북한을 완충국으로 삼으려 하는데 그 생각은 오래 못 간다. 중국은 안 그런 척하지만 북한은 실패한 국가여서 그런 나라를 완충국으로 할 수 없다. 중국의 생각은 실패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같은 ‘평상적’ 접근도 그만둘 때다. 6자회담이 쓸모없어졌음은 명백하다. 중국이 아직은 북한을 생각하며 정치적 우선권을 주지만 이미 그런 방식을 재고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는 천안함 문제를 안보리로 가져가 새 결의안이 나오도록 해야 하며 또 한·미·일의 억지력도 강화해야 한다. 한·미·일은 다시 안보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 연착륙을 위한 시나리오를 한·중·일이 논의하는 장치도 개발해야 한다. 중국은 이 문제를 이웃 국가와 논의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왔지만 일부 중국 관리나 전략 싱크탱크들은 이미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김=천안함의 위기를 잘 다루면 기회가 된다는 의미로 말하는 것 같다.

▶후나바시=그렇다. 북한이 천안함에 개입됐다면 이는 북한의 절망감과 권력 승계 시점에 드러난 정권의 위기를 드러낸다. 북한 독재 정권은 위기를 맞고 있다. ‘얼음이 녹는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말이 있다. 정권도 그렇다. 사실 새 지도자의 권력 승계가 계획된 시점은 극도로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북한이 왜 천안함 사태를 일으켰을까. 나는 야심에 찬 군 지도자들이 충성심을 지도자에게 보이려 했을 것으로 본다. 망동주의다.
최고지도자가 군 지도부로 하여금 자신과 새 지도자에게 충성심을 보여 주도록 부추기거나 용인했을 수도 있다. 새 지도자 스스로 자신이 센 사람(터프가이)임을 보여주려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은 정권 위기의 불안정한 상태를 반영한다. 그래서 장기적 관점의 전략적 비전이 필요한 것이다. 6자회담의 일상적인 과정을 넘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수역으로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사태에 매우 신중한 접근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만일 우리가 군사 보복을 택한다면 모두 패배자가 된다. 가장 큰 피해자는 북한이 아니라 우리다. 현 시점에서 군사적 옵션은 테이블 위에 올라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민 가운데 군사 보복을 지지하는 사람은 10%밖에 안 된다는 여론 조사가 있지 않나. 난 그렇게 읽었다. 군사적 옵션은 대안이 아니다. 극적 대응을 하지 않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분노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잉 반응을 하면 안 된다. 북한 강경파들은 우리의 과잉 반응을 기다리며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다. 북한이 쳐놓은 덫에 걸려들어선 안 된다.

▶김=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베이징 방문 사흘 전 이명박 대통령이 상하이에 갔다. 그때 중국은 김 위원장의 방문을 귀띔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분개했다. 중국은 김정일 방중 이후 한국 반응에 불쾌감을 표시한다. 그러나 화가 난 쪽은 한국이다. 그처럼 중요한 문제인데 중국에 대해 한국이 아무 지렛대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중국을 다뤄야 할까.

▶후나바시=미국과의 동맹 강화, 일본과의 안보협력 강화가 레버리지다. 한·미·일 세 나라가 북한 급변 사태 계획이나 연착륙 전략에 힘을 모아 대처할 수 있다면 중국은 이를 주시하고 접근할 것이다. 3국의 정치적 결의와 단합이 중국에 압력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기술적으로 지혜롭게 중국을 북한 문제에 좀 더 개입하게 할 수 있다.

▶김=미국은 표면적으론 증거가 발견될 경우 서울과 함께 제재를 강화하는 행보를 하겠다고 한다. 핵 대화도 유보한다. 그런데 미·중이 한쪽으론 핵대화를 하고 한쪽으론 제재하는 투 트랙 대북 접근을 할 수 있다고 보나.

▶후나바시=가능하겠지만 효과는 의심스럽다.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겪는 핵문제와 정권 위기라는 이슈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려면 미·중·한·일이 새로운 미래적 패러다임으로 이동해야 한다. 한·미·일은 동맹으로써 또 민주국가로써 미래 비전을 공유해야 한다. 중국도 이를 지지해야 한다. 중국도 한국처럼 분단 국가여서 한반도 통일을 지지할 강한 이유가 있다. 중국에 ‘완충 국가’가 가능한 한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패한 국가가 영원히 완충 국가로 남을 수는 없다. 중국이 결심할 때가 된 것이다.

▶김=그렇게 보면 이번 사태가 통일 논의의 문을 여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후나바시=맞다. 그러나 도발적인 통일 정책을 취해선 안 된다. 북한을 자극하고 중국도 지지를 꺼리게 된다. 통일의 기반과 조건을 준비하고 국제적 환경을 통일에 유리하게 하도록 논의해야 하는데 이는 미묘하고 암묵적이며 비공적인 어프로치가 될 것이다.

▶김=그렇다면 북한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 꼴이 됐다.

▶후나바시=그렇다. 천안함 문제는 핵 이슈와는 다르다. 재래식·구식이지만 위협은 더
폭력적이고 더 현실적이다. 정치적으로 더 폭발적이다.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김=중국은 더 이상 북한을 보호할 입장이 아니지 않은가. 중국의 환구시보가 최근 북한의 핵게임을 경고한 것은 힌트를 준다.

▶후나바시=중국은 지금껏 북한을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북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 될 수 있다는 의심을 하면서도 김정일의 방문을 허락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 내부에는 아주 강렬한 정치적 논의가 있을 것이다. 중국은 지금 한계에 접근하고 있다. 중국 내부에 아주 첨예한 논쟁이 진행 중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몇 년 내에 중국의 주요 정책 결정자와 싱크탱크들은 북한이 전략적 자산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천안함 사태가 영향을 크게 줄 것이다.

▶김=천안함 사태에 대해 일본은 오래 침묵하고 있다. 왜 그런가.

▶후나바시= 일본이 북한으로부터 받는 가장 큰 위협은 미사일이다. 일본인이 천안함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다. 북한이 서해에서 한 도발을 일본에 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이 어느 때보다 무모한 행동, 협박을 고조시키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점을 일본은 걱정하고 있다. 일본에도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만에 대한 위협이 아니란 우려를 하고 있으며 그 위협을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일본은 이명박 정부를 주의 깊게 주시하고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대응이 세심하고 꼼꼼하며 신중하다고 일본은 보고 있다. 그래서 일본도 조용한 것이다. 일본은 한국이 이 문제를 안보리로 가져갈 경우 또 국제 제재나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을 강화하게 될 경우 한국을 지지할 것이다. 한·미가 초청한다면 3국 합동 해군 군사훈련에도 기꺼이 참여할 것이다. 6자회담 재개에는 회의적이며 이를 연기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다. 일본은 한·미·일 3자가 정책 대화와 조정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김=그런데 최근 미·일 동맹의 약화는 현재의 미묘한 시점에서 볼 때 한국으로선 우려스럽다.

▶후나바시=나도 우려한다. 미·일 동맹의 악화나 교착은 평양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양국 안보 정책의 변화는 급박하고 중요하다. 특히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로 미·일 관계에 긴장이 짙은데, 이를 타개하고 미·일 관계가 개선되도록 이명박 대통령이 도움을 주기를 희망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1999~2000년 초반 아세안+3 회담을 통해 중·일 긴장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 이 대통령이 이와 유사한 역할을 지금 해준다면 미·일 양국은 크게 고마워할 것이다.

▶김=김정일 위원장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후나바시=후계 문제다. 후계자가 이번 중국 방문에 동행했는지 모르지만 그랬다고 해도 중국 지도부의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중국과의 협상(deal)이다. 어떤 의미에서 김 위원장은 떠오르는 중국, 수퍼 파워가 돼 가는 중국과 21세기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이 맹공에 벌거벗은 채 노출돼 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광산이나 항구를 보호해야 하지만 그럴 능력이 안 된다. 중국에 안보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는 조만간 일본·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발 대형 충격과 영향에 고스란히 노출될 것이다. 김정일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경제·정치·문명적 통제를 겁낸다. 그가 이 싸움을 어떻게 해나가는지 지켜보는 게 아주 중요하다. 지금까지 잘해왔지만 자신을 아주 많이 소모시켰다. 북한이 볼 때 미국은 큰 위협이 아니다. 미국이 또 다른 전쟁을 벌일 여력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경제도 문제긴 하다. 화폐 개혁 실패 이후 경제가 다시 파멸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중국이 더 자유스럽고 민주적인 나라가 되기 전에 북한이 개혁될 수 있을 것 같은가.

▶후나바시=나는 새로운 견해가 형성되는 것을 주목한다. 불과 3~4년 전까지 대부분은 ‘우리 평생에 북한이 붕괴하진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북한이 우리 평생에 심지어 3~5년 사이에 붕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그 붕괴는 질서도 없고 전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동아시아를 위험한 상태로 몰아갈 수도 있다.

정리=안성규 기자 askme@joongang.co.kr



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히 신문 베이징·워싱턴 특파원과 미국 총국장을 지낸 외교 전문기자다. 브루킹스 연구소 특별초청연구원,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2007년엔 북한 핵실험을 다룬 『김정일 최후의 도박』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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