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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의 한 지붕 두 종교] 2. 불교 남편, 기독교 아내 강신표·김봉영 교수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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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강신표(68) 교수 부부를 만나면 덩달아 기분이 좋다. 오래 함께한 부부의 노년이 보기 좋아 나도 저렇게 나이가 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늘 그림자처럼 함께 다니는 그들은 모든 것을 같이하지만 유일하게 종교가 다르다. 듣고 보니 그들의 가족사는 현대 한국종교사의 축소판이다.

경남 김해시 인제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명예교수로 있는 그의 전공은 사람을 연구하는 인학(人學). 부부는 한때 같은 기독교인이었으나 강 교수는 30여년 전부터 불교를 연구해왔다. 1974년 하와이대 유학 시절 한인교회에 나가 부인과 함께 성가대로 활동했으나 귀국 후 한국문화를 공부하면서 불교를 모르면 안 된다는 한 학자의 말 한마디에 불교에 입문했다.

경남 통영 출신인 그의 선친은 일본 천리교의 포교사. 부친은 일제 침략기 한국인을 차별.편견 없이 대하는 천리교인에 감화받아 일본 천리학교까지 다녔으며 광복 후 천주교로 개종했다.

강 교수가 빙그레 웃었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스님이 될 사주랍니다." 이런 인연 때문일까. 그는 75년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 스님을 만났고, 81년 송광사에선 현호 스님에게 재가불자 오계를 받았다. 경봉 스님에게 법명 취원(翠園)과 함께 게송도 받았다. 이후 전국 각지를 돌며 고승을 만났고, 많은 불교 학자와 교류했다.

현재 그는 김해 인근 신어산 기슭의 은하사와 동림사에 수시로 다니며 통도사 반야암에서 열리는 지안 스님의 가족법회에도 참석한다. 절에는 기독교 신자인 부인도 같이 간다. '천수경''금강경오가해'를 읽고 또 읽으며 '능엄경'에도 푹 빠졌다. 요즘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수행법인 위파사나를 하고 있다.

부인 김봉영씨. 전통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전남 강진에 세운 백양교회는 2002년 100주년을 기념하기도 했다. 할아버지를 따라 교회에 다닌 부친은 서양 선교사를 통해 일찍이 신문화를 접했으며, 딸은 자연스럽게 모태 신앙을 갖게 됐다. 다분히 종교적 성향이 강한 남편에 비해 부인은 종교적인 생활에 더 큰 무게를 둔다.

"신앙보다 교회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무척 '쿨(cool)한'신앙인이죠. 아빠가 절에 가면 물론 같이 가지만 남들이 염불할 때 속으로 혼자 찬송을 불러요. 아빠나 가족이 무엇을 믿든 존중하고 거부하지 않아요."

남편을 '아빠' 라고 부르는 부인은 무엇이든 다 수용할 태세다. 그는 여성으론 처음으로 서울 하얏트 호텔 홍보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딸이 둘 있는데 큰딸은 기독교 집안에 시집 가 교회에 다니고 있고, 가톨릭 신자였던 작은딸은 시댁의 불교를 따랐다가 최근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왔다.

부부는 외국 여행 중 성당.교회.절을 가리지 않고 들어간다. 종교에 대한 장벽이 없기에 서로에게 "내 것을 믿어라. 내 것이 최고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강 교수는 서울 올림픽이 열릴 당시 외국 학자를 절에 머물게 하며 한국문화를 알렸다. 82년 세계적 석학 레비 스트로스를 초청, 통도사 새벽 예불에 참여시키고 발우공양으로 식사하고, 경봉 스님과 선문답을 하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문화를 알리려면 템플스테이(산사체험)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실제로 많은 외국 학자는 한국 절에서 보낸 하룻밤이 가장 감명 깊었다고 해요. 인류학이 21세기에 해야 할 일은 불교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그의 말은 계속됐다. "사람은 생긴 대로, 태어난 대로 인연에 따라 사바세계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요. 그러면서 생기는 숱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자연과 자비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종교도 사람을 자비로 감싸야 합니다. 관용을 베풀지 않으면 함께 살아가기 힘들 겁니다."

"불교의 무슨 구절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물음에 그는 '제법무아(諸法無我),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들었다. 그러더니 바로 선문답으로 들어간다. "쌀 한 톨 손에 쥐고 여기까지 왔네요.""금강산 일만이천봉을 한 팔에 안았더니, 참 기분 좋다더라! 알겠느냐?" 그는 한 고승에게 받은 이 화두를 아직 놓지 않고 있다.

김나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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