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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구단 관계자들과 개인적 약속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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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오심과 편파 판정. 스포츠에서 심판 판정 문제는 항상 ‘뜨거운 감자’다. 최근 대학축구에서 심판을 매수한 감독과 돈을 받고 편파 판정을 한 심판들이 영구 제명당하는 일이 있었다.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프로농구에서도 판정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2005년 출범한 프로배구 V리그에서는 여섯 시즌 동안 판정 잡음이 거의 없다. 그 배경에는 ‘코트의 포청천’으로 불리는 김건태(55·사진) 심판이 있다.

“배구 심판 수준은 우리가 세계 최고입니다.”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해도 될까.

“야구는 메이저리그(MLB), 축구는 프리미어리그(EPL), 농구는 미국프로농구(NBA)가 있잖아요. 실력과 심판 부문에서 모두 우리가 배울 게 있는 곳이죠. 하지만, 배구는 그게 없어요. 이탈리아나 러시아가 경기 실력에선 우리를 앞서도 심판 수준은 우리보다 높지 않습니다.”

이 정도면 대단한 자부심이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럴 만도 하다. 김건태 심판은 현재 세계에서 11명밖에 없는 국제배구연맹(FIVB) 국제심판이다. 배구 국제심판은 800명이 넘는다. 그 중 어학·매너·실력을 겸비한 심판을 FIVB 심판으로 임명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등을 맡긴다.

김씨는 98년에 처음 FIVB 심판이 된 이후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심판을 봤고, 월드리그에서는 2006년부터 3년 연속 결승전 주심을 맡을 정도로 세계 톱 클래스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2005년 V리그가 출범할 때 심판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기존의 대한배구협회 소속 심판들을 배제하고, 완전히 새로 판을 짰다. 당연히 강한 반발이 있었다.

“프로로 새로 출범하는데 과거와의 고리를 끊고 싶었어요.”

심판 경험은 없지만 열정과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기초부터 교육을 했다.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배웠지만 실전은 달랐다.

“막상 경기에 투입하니까 모두 벌벌 떨더라고요. 오심을 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과 공포였죠. 내가 맞은편에 앉아서 봐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하라고 다독였죠.”

실제로 그는 그렇게 했다. 사실상 모든 경기의 심판을 본 셈이다.

“실력이 모자라서 오심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문제가 될만한 판정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그는 2005년 말, 한국프로배구연맹(KOVO) 심판위원장에서 스스로 심판부장으로 내려와 지금까지 국내 프로배구 심판을 키우는 데 힘을 쓰고 있다.

“2007년 배구 월드컵 개막전 때였어요. 갑자기 앞이 깜깜해 져서 심판대에서 내려왔어요. 스트레스에 의한 탈수현상이라더군요. 3년간 쌓인 스트레스에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 거죠. 나중에 선수들이 그러더군요. ‘마치 촛불처럼 흔들렸다’라고요.”

그는 지금도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라이벌전 등 민감한 국내경기의 주심은 도맡아 한다. 그의 정확한 판정과 흔들림 없는 소신을 누구나 알고 있기에 쓸데없는 잡음이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새끼손가락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터치 아웃은 어떻게 잡아낼까.

“저라고 그걸 볼 수 있겠어요? 애매한 경우는 일단 부심, 선심을 부르죠. 아무도 확실하게 얘기 못해요. 그러면 시간을 끌면서 당사자들의 표정을 살펴요. 터치한 선수는 아무래도 표정이 달라요. 터치 안 한 선수는 당당하죠.”

그런데 이 백전노장을 속이는 선수도 있다.

“누구라고 얘기는 못하지만 한두 명은 정말 능청스러워요. 판정 내려놓고 나중에 리플레이를 보면 제가 속은 거예요.”

그럴 때 김건태의 진가가 다시 나타난다.

“오심을 했을 때는 선수들에게 솔직하게 ‘내가 못 봤다’고 시인합니다.”

김건태 심판이 ‘포청천’이라는 별명을 유지하는 비결은 따로 있다. 바로 철저한 자기관리다.

‘심판이 배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매일 2-3시간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 덕분에 1m90cm, 88kg의 체격을 유지하고 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외출할 때는 항상 넥타이 정장 차림이고, 지금도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제일 중요한 건 감독이나 구단 관계자, 누구와도 개인적인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결벽증이라는 소리까지 듣지만 중립성을 유지하고, 편파판정 의혹을 받지 않으려면 사생활이 깨끗해야 합니다.” 심판을 시작한 1985년 이후 25년간 지켜온 소신이다.

그런 그가 인터뷰 도중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키운 심판 중 여럿이 배구판을 떠났습니다.” 그가 제일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현재 배구 심판은 기본급에 심판수당을 받고 있습니다. 등급별로 차등이 있는데 저 정도 외에는 생활이 안 되는 수준이에요. 생활이 된다면 재능 있는 심판이 많이 나올 텐데요. 하지만, 현재 국내 배구의 수입구조를 보면 무작정 많이 달라고만 할 수는 없잖아요.”

FIVB 국제심판 정년은 만 55세다. 1955년생인 김건태 심판은 올 11월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여자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국제심판에서 은퇴한다. 하지만, 국내에선 3년 더 심판을 맡을 예정이다.

글=손장환 선임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김건태 심판=서울 리라공고-명지대-충주비료에서 배구 선수 생활. 잦은 부상으로 은퇴하고 직장 생활하다가 1985년 심판 입문. 90년 국제심판, 98년 FIVB 국제심판. 2000년 시드니부터 2008년 베이징까지 3회 연속 올림픽 심판. 월드리그 세계선수권 등에서 주요 경기 주심. 2005년 초대 KOVO 심판위원장. 현재 KOVO 심판부장. 2007년 제1회 한국 페어플레이상 특별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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