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혈통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66호 33면

근대 유럽의 왕실 자손들은 가정적으론 대개 불행했다. 외국의 왕가나 귀족 집안과 정략결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혈맹’을 만들어 왕실과 나라를 지키는 외교 활동의 하나였다. 양가의 피를 함께 이어받은 자손을 얻어 왕위와 영토를 물려주는 것은 의무나 다름없었다. 사랑이 끼어들 틈은 별로 없었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인간적으로는 괴로웠을 것이다. 왕실은 배출구를 살짝 열어줬다. 정부(情夫)를 둬도 눈감아준 것이다. 영국 하노버 왕가의 마지막 남성 군주인 윌리엄 4세(1765~1837)도 그랬다. 과정과 결과가 묘했다. 그는 1818년 독일 작센-메닝겐 가문의 아들레이드와 결혼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아일랜드 여배우 도로시어 조던과 동거했다. 총각 때 정부를 둔 것이다. 그 사이에 10명의 자녀까지 낳았다. 영국 왕위계승법에 따르면 국냅� 성공회에서 승인한 부부 사이에 낳은 자녀가 아니면 왕위를 잇지도, 왕가의 일원이 되지도 못한다. 그는 정작 ‘합법적인 부인’에게선 자식을 얻지 못했다. 두 딸이 태어났지만 아주 어려서 숨졌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는 조카인 빅토리아에게 넘어갔다.

즉위 전 클래런스공으로 불렸던 윌리엄 4세는 자녀들에게 피츠클래런스(클래런스의 자녀)라는 성을 쓰게 해줬다. 아들들에겐 작위를 주어 귀족으로 만들었고, 딸들은 귀족 집안에 시집을 보냈다. 셋째 딸인 엘리자베스 피츠클래런스(1801~1856)는 스코틀랜드 귀족인 18대 엔롤 백작 윌리엄 헤이와 결혼했다. 둘째 딸인 애그니스(1829~1869)는 스코틀랜드 귀족인 5대 파이프 백작 제임스 더프와 맺어졌다. 이 부부의 넷째 딸인 애그니스(1852~1926)는 잉글랜드 외과의사인 앨프리드 쿠퍼 경에게 시집갔다. 이들의 딸인 스테파니는 유대계 금융업자 아서 프란시스 레비타와 혼인했다. 1850년대 영국으로 이민한, 독일 태생의 유대계 폴란드 집안이다.

스테파니와 아서의 딸 에니드는 이웬 도널드 캐머런(스코틀랜드계 금융인)과 결혼해 아들 이언을 낳았다. 이언은 준남작 윌리엄 마운트의 딸인 메리와 결혼했다. 여기서 태어난 아들이 이번에 영국 총리가 된 데이비드 캐머런이다.

영국 언론이 “캐머런 총리가 윌리엄 4세의 직계 후손”이라고 보도한 내용의 실체다. 왕실과의 관계는 우리로 치면 “전주 이씨와 결혼한 조상이 있다”는 정도로 멀기만 하다. 게다가 그는 작위를 물려받거나 받은 적이 없어 귀족이 아니다.

캐머런의 부계 쪽을 보면 완전히 자수성가형이다. 부동산·주식 중개업으로 일가를 이뤘다. 스코틀랜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고조부 이웬은 금융업에서 성공을 거둬 기사 작위를 받았다. 증조부 이웬 앨런은 글로벌한 인물이었다.

1905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193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세상을 떠났다. 캐머런 집안은 대대로 자식 교육에 무척 신경을 썼다고 한다. 특히 사람들과 소탈하게 어울려 지내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정치 지도자를 낳는 데는 왕실 핏줄보다 그런 노력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