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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차력사와 아코디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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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 연극 ‘차력사와 아코디언’은 무대 뒤의 인생을 다룬다. 고통스럽게 떠돌다 말없이 사라져가는 쓸쓸한 인간상을 담고 있다.

단출한 무대였다. 배우들은 진짜 차력을 펼쳤다. 목으로 나무에 못을 박고, 눈을 가린 채 검으로 촛불을 껐다. 객석에선 탄성이 터졌다. 유년의 기억, 그 너머에 잠들어 있던 '약장사'들이 무대에서 깨어났기 때문이다. 코앞에서 펼쳐지는 차력은 추억으로 가는 징검다리였고, 객석에선 웃음꽃이 피었다.

극이 끝나기 직전, 또 한번 차력이 펼쳐졌다. 그러나 객석은 침묵했다. 막 뒤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삶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곳엔 가슴 저미는 낭만도, 세상을 떠도는 자유도 없었다. 분장을 지운 그들의 얼굴에는 삶의 고통만 파리하게 떨고 있었다. 집 나간 아내를 찾기 위해 전국을 두 바퀴나 돈 아코디언, 약을 팔면서도 연극 배우를 꿈꾸는 양숙, 그녀와 함께 치킨집을 차리고 싶은 차력사. 막 뒤에는 찌들 대로 찌든 일상과 고단한 슬픔이 무릎까지 차 있었다.

약장사들의 생활을 보자 객석은 달라졌다. 차력은 더 이상 쇼가 아니었다. 그것은 몸부림이었다. 먹기 위해, 살기 위해, 고통을 떨치기 위해 온 몸을 비틀어대는 절규였다. 그제야 객석은 깨닫는다. 자신의 삶도 약장사의 떠돌이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말이다. 왜 사는지, 무엇을 찾는지도 모른 채 흘러가고 있다. 막 사이에 흐르는 유행가만 답을 대신할 뿐이다. "와~았다가 그냥 갑니다."

'차력사와 아코디언'의 시선은 유달리 깊지도, 그리 넓지도 않다. 그러나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우는 애잔함과 삶의 바닥을 적시는 지점들이 매력이다.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블랙박스 씨어터, 1만2000~2만원, 12월 3일~내년 2월6일 인켈아트홀 2관에서 연장 공연, 02-741-3934.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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