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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효과 평가, 국민 건강 생각하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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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맞춤 의약의 트렌드를 거스르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어 의료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약제의 경제성 평가를 통해 보험 약제 목록을 재정비하는 사업이다. 같은 효과를 가진 약이라면 가급적 싼 약을 처방하도록 하겠다는 게 그 취지다. 약효가 같은 데도 굳이 비싼 약을 처방한다면 비난 받을 일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현재 정부에서 추진 중인 이 사업의 첫 번째 대상이 고혈압 치료제다. 그 첫 연구 보고서의 내용은 현장의 의료진들에게는 다소 황당하다. 고혈압 약은 계열별로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현재 처방되고 있는 고혈압 약의 모든 계열들 간의 효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즉, 50년 전 개발된 이뇨제나 최근 개발된 ARB 치료제가 혈압을 떨어뜨리는 면에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50년 전 개발된 이뇨제를 처방하는 것이 비용 면에서 효과적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처방 현실과는 매우 거리가 있다. 고혈압은 환자 개개인의 특징, 예를 들면 병용(竝用)하고 있는 다른 약이 있다거나 혹은 다른 동반 질환이 있다거나 하는 영향 요인에 따라 질병 상태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게다가 만성 질환이기 때문에 단지 혈압을 떨어뜨리는 것보다도 심혈관 질환을 얼마나 잘 예방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물론 고혈압 약은 기본적으로 혈압을 떨어뜨리기 위해 처방된다. 그러나 각 고혈압 약제의 계열들은 혈압을 낮추는 효과만 같을 뿐 기전에 따라 효과와 반응은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면, 이뇨제는 부종이 있는 환자에게 효과적이지만 당뇨와 통풍, 저칼륨혈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혈압을 떨어뜨리지만 심부전을 유발하는 약도 있다. 이런 약들도 거의 비슷한 혈압 강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새로 개발된 약들은 혈압 감소 효과 외에도 당뇨병 발생을 줄이기도 하고, 뇌졸중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질환까지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50년 전 개발된 이뇨제의 처방을 권장하는 이번 연구 발표는 실제 의료 현장의 임상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결론이라고 생각된다. 기존에 발표된 연구 문헌들을 단순 비교해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도 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결론은 고혈압 전문의들이 환자들에게 굳이 비싼 약을 처방해 왔다는 오해와 불신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스럽다.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선의 약물이며, 최선의 약물에 대한 결정은 환자와 임상 전문가가 내려야 한다. 물론 국민의 약값 부담을 감소시키고, 국민 건강을 증진시키고자 하는 정부의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정책이 올바르게 시행되기 위해선 과학적으로 타당한 연구 결과를 통해 심도 있는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

박창규 고려대 구로병원 심혈관센터 교수